[프롤로그] 아빠는 어쩌다 나같은 딸을 낳아서

아빠의 호두나무

by 배추도사

부모는 자식이 커가는 모습을 보는게 삶의 재미다. 근데 그건 자식도 마찬가지다. 나를 키우고,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서 부모는 생의 어느순간 마다 큰 결정을 내리고, 서로 다투고, 다시 의기투합하고, 도전하고 인내를 한다. 아빠의 딸이어서 행복했던 이유는 이 지점이었다. 아빠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게 삶의 낙이었다. 어렸을적 시오노 나나미의 그리스로마신화에 빠져 그 평론을 이야기하면서 시오노나나미 처럼 이세계 저세계 돌아다니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라고 말해준 덕에 여전히 내꿈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글쓰는 사람이다.


아빠와 주말 아침마다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즐겁다. 아빠는 딸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부산에서 풍요로운 삶을 살다가, 자식을 위해서 엄마와 의기투합하여 서울로 정착하여 도전을 한 경험, 경기도의 동네를 바꿔가면서 작은 병원을 운영하면서 그속에서 경영을 하면서 느끼는 점, 엄마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형제들과 의절했던것도, 내가 엄마 지갑에서 몰래 돈을 훔쳐 들켜 부모님을 아프게 한건 여전히 아빠를 울다 웃게 한다. 더 소중한걸 지키기 위해서 피붙이에게 냉정해지고, 사랑하는 자식을 바른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 많이 엄하게 굴고 뒤에선 울었던 시간들. 서울에 사는 평범한 소시민이었던 아빠의 이야기는 서기 2025년, 그의 딸이 힘든 순간 마다 '아빠는 어떻게 했더라' 되새김질 하며 지혜로운 선택을 하게 한다.


자식이 크기 위해선, 부모가 먼저 성장을 해야한다. 하지만 어느순간 우리 부모님의 성장이 멈췄다. 나의 발육과 성장 변곡점마다 아빠가 먼저 알을 깨고 큰 세계로 나아갔다. 실패는 있더라도, 배운건 많았기에 더 아량이 넓어지고, 대범해지며, 또 새로운 도전을 하며 더 멋지게 변했다. 근데 그런 아빠는 7년째 같은 모습이었다. 요즘은 겁도 많고 소심해진거 같다. 왜그런가 생각했는데, 이유는 나때문이다. 내가 성장을 멈췄기 때문이다. 아이가 유치원을 가고, 입학하고, 수능을 치르고, 취업을 하고, 독립을 하거나 결혼을 하는 삶의 분기점마다 부모와 자식은 함께 성장한다. 하지만 내가 취업을 하고 나서 어떤 큰 도전을 하지 않아서 성장을 멈췄다. 부모도 무언가에 안달복달하거나 조력할 일이 없으니 머물러있거나 나이가 들면서 겁이 많아졌다. 어릴땐 아빠의 도전이 나의 성장으로 낙수효과가 이뤄졌을 지언정, 자식이 성인이 되고 나면 효력이 없어진다. 오히려 환갑이 넘으면 부모는 변화가 싫고 어린아이처럼 굴기도 한다. 그럼에도 자식이 어떤 도전을 하면 부모는 성장을 한다. 이걸 결혼준비를 하면서 느꼈다.


아빠는 어떤 마음으로 날 길렀을까. 작년 가을, 강화도에 한 농부의 밭에 놀러갔다. 농부가 도착하자 마자 얼마전 호두나무를 심었으니 꼭 보여주고 싶다고 해서 따라갔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아주 가녀린 나뭇가지가 꽂혀있어서 낄낄거렸는데, 농부는 흐뭇하게 호두나무를 바라보며 지금은 작아도 먼미래에 아름드리 큰 재목이 될거라고 그래서 호두 나무 주변의 터를 땅을 비옥하게 관리하고 잡초를 정리했다며, 뿌듯해 하는 모습에서 눈물이 주체하지 못하고 흘렀다. 분명 부모님도 내가 큰 사람이 될거란 확신으로 아낌없이 마음을 쏟고, 또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거다. 근데 그런 마음과 달리 나는 호두나무는 커녕 쉽게 휘둘리고 쉬이 꺽이는 무언가가 된거 같아서 죄송스러워서, 눈물이 멈추지가 않았다. 강화도에서 돌아오는 버스속에서 정말 많이 울었다.(사실 지금도 호두나무를 생각하면 눈물이난다)


아빠가 나에게 더이상 무언갈 해주지 않아도 될 정도로 어른이 됐다. 일정 수준의 돈을 벌 수 있게 됐고, 옳고 그른것이 무엇인지 분별할줄 알고, 비판을 받더라도 나를 믿고 용기를 내는 방법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너무 고되다. 왜이리 되는게 없냐. 그냥 캥거루 족으로 영원히 되는 대로 살고 싶다. 그러다가도 아빠의 삼사십대를 떠올려보면 두근거려진다. 아빠가 모르는 더 크고 재밌는 세계에서 놀고 싶다. 물론 아빠처럼 실패도 하고, 노가다만 하고, 돈도 날려서 악몽을 꾸고 그러겠지 그래도 그 과정이 나를 단단한 호두나무가 되게 한다고 확신한다. 보수적인데다가 부모는 딸이 무언갈 하겠다면 일단 불안해하고 본다.나도 겁나고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근데 그때마다 용기를 내게 만드는건 역설적으로 부모를 보고 자란 환경과 그들에게 받은 사랑이다. 부모님이 어떤마음으로 나를 사랑하고 키워왔는지. 아빠도 힘들때마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 어떻게 했는지, 그 사랑의 모양을 생각하면 의지가 다잡아진다.


나는 글로 돈을 벌었다. 그래서 항상 글의 한계를 느끼곤 했다. 글은 수많은 표현 수단중 가장 한계 많다. 눈빛, 표정, 말투에 비해 그저 '사랑한다'는 말 자체는 아무 힘이 없다는건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지 않나. 하지만, 그 모든 표현수단 보다 활자가 갖는 우월함은 영원하다는 점이다. 기록하는 순간. 영원하다. 눈빛과 목소리, 몸짓은 찰나지만. 아빠엄마와 나는 함께 산 날 보다 함께 살 날이 더 적을거다. 더욱이나 독립을 준비하면서 이제 우리둘은 지금처럼 매일 집에서 마주하며 온기를 느끼는 날이 적어질거다. 그래도 내가 받은 사랑이 소중해서, 내가 까먹더라도 글은 기억하고 간직하고 있을수 있으니깐. 내가 제일 잘하는 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써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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