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함의 모양은 마라톤 대회에 있지
영하 8도, 토요일 아침 8시 목동 종합운동장을 뱅뱅 돌면서 어쩌자고 여기에 또 있는 건가 싶었다. 자처한 일인데도 내가 나를 모르겠다. 나고야 여성 마라톤에 신청을 한 것도, 그리고 완주를 위해서 러닝 클래스를 등록한 것도 다 내 짓이다. 책상에서 손가락만 까딱거리며 클릭할 땐 뭐라도 할 거 같았다. 근데 막상 뛰자 ‘왜 그랬을까 ‘생각을 한다. 마라톤을 시작한 지 언 4년 차. 풀마라톤을 세 번 완주하고, 크고 작은 대회를 나간 데다가 매달 누적거리가 최소 100km가 나오니깐 다들 러닝을 좋아하는 줄 안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 ’와! 뛸 때 행복해서 날아갈 거 같아‘라고 생각한 건 정말 손에 꼽는다. 그런데 왜 나는 계속 뛰는 걸까. 왜 계속 마라톤에 도전하는 걸까.
"이제 배추도 대회 나가야지! “
“대회? 그거 왜 나가? 공짜야?”
“아니, 대회비 3만 원 정도야. 진짜 재밌어!”
러너 초기, 크루에서 다들 정기적으로 대회를 나가는데 공짜여서 다들 우르르 나가는 줄 알았다. 근데 돈을 주고 뛰다니. “왜? 다들 한가해?” 생각했다. 그리고 나간 첫 대회가 2022년 서울신문 10km였다. 그전까지 러닝을 하는 이유는 러닝크루에서 멋진 사진을 받을 수 있어서, 거의 공짜로 운동을 할 수 있어서였다. 그런데 3만 원이나 내고 뛰라니. 그런데 이날 대회 출발선에 서고 나서야 3만원 이상의 가치를 누렸다.
첫 대회에서 가장 새롭고 신기했던 건 몸의 모양이 참 다양하다는 거였다. 남녀노소라는 말이 딱 맞게 다양한 사람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리고 수많은 러너가 뱃살이 나와도, 다리가 짧아도 쫄쫄이 바지와 나시티를 입어 자기몸을 드러냈다. 나는 변태처럼 그사람들의 몸을 훑었다. 그 제멋대로 생긴 그 몸들에서 뿜어져 나온 건강한 아우라가 나를 압도했다. 설렘과 웃음이 섞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러너들, 출발 전 설레는 마음을 나누며 ‘할 수 있다’고 여기저기서 외쳐대는 다짐, 서로를 응원하는 ‘파이팅’이 난무하던 출발선. 그때의 기억은 여전히 힘과 에너지를 준다.
그전까지 건강함을 하나의 잣대로 정의했다. 연예인처럼, 미디어가 추앙하는 몸이었다. 그래서 연예인의 식이요법을 따라 하고 그들이 다니는 PT와 발레스튜디오를 다녔다. 젊음을 과시하듯 과격한 운동을 했고, 그곳에서만 만나는 또래와 어울리다 보니 노인들이나 아줌마 아저씨가 운동하는걸 잘 보지 못했다. 노력 끝에 잘록한 허리와 길쭉한 다리를 만들었다. 종종 건강에 자만하고,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 약간의 우월감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동시에 아이를 갖고 몸이 늘어지는 것, 나이가 드는 것에 두려움이 있었고, 매일 체중계 위에 올라서 조금이라도 살이 좀 찌면 경각심이 들었다. 그때 나는 정말 건강했을까.
건강함은 잘록한 허리, 마른 체형, 깨끗한 피부만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날 대회에서 건강함의 다양한 모양과 상징을 발견했다. 굵은 허벅지에 선명하게 그어진 대퇴 사두근, 출렁거리는 뱃살에도 흐트러지지 않는 호흡, 촌스러운 동호회 싱글렛을 뚫고 나오는 평평하고 단단한 등근육. 150 정도의 작은 키라 쉼 없이 구르던 아줌마의 다리 감기, 큰 목소리로 파이팅을 외치며 추월한 70대 할아버지의 갈라진 목소리, 모래가 뿌려지듯 눈밑 볼에 가득한 주근깨도 건강함의 표시이자 꾸준함의 상징이었다. 비로소 내몸을 옭아 매던 고정관념에서 해방됐다. 마음이 자유로워져서 뛰는 내내 계속 웃었고 나도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화이팅을 외쳤다. 다리가 짧아도, 종아리가 굵어도, 뱃살이 늘어져도, 피부가 거뭇거뭇해도 어떤 몸을 가지고 있든 앞으로 나가는 러너는 건강하고 멋지다.
왜 돈 내고 뛰어?라고 말한 사람이, 2022년 첫 대회를 시작으로 풀마라톤 3번 을 완주했다. 풀마라톤 3번 다 32km 지점에서 ‘미쳤지 이걸 내가 왜 했지’라는 생각 한다. 아마 다가올 나고야 여성마라톤에서도 그 생각을 하면서 울면서 뛰고 있을 거다. 훈련을 하다가도 매 순간 ‘여기까지만 할까?’, ’대회 환불받고 싶다‘, ’중도 포기하고 싶다‘생각한다. 그런데도 멈추지 않고 왜 뛰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많다. 이건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이야기다. 그래서 써보기로 했다. ’ 나는 어쩌다가 뛰는 걸 멈추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