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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추도사 Oct 27. 2020

서른이 되서야 알게 된 것

부모와 종교의 공통점

기독교 교리는 참 나랑 안맞지만 성당친구들은 어쩜 이리 잘맞냐


가톨릭과 나는 지독히도 안 맞다. 우선 연단에서 누군가가 말하는걸 얌전히 듣는 성격도 아니고, 나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 타인도 배려하는 법이라는 게 지론이기에 예수가 십자가에 박힌 게 고맙지 않고 멍청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성당을 다닌 이유는 오직 하나. 아빠 때문이다.

아빠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현명하고, 논리적이며, 배려심이 깊은 사람이다. 그런 아빠가 무슨 일만 있으면 주님을 끌어다 말할 때마다 답답했다. 내가 취업을 하든 못하든 아빠가 일적으로 속상한 일이 있든 없든 주님의 뜻이라고 말했고, 좋은 일이 있으면 주님에게 감사기도를 했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주님을 원망하는 자기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그때마다 경험주의와 논리주의로 똘똘 뭉친 딸년은 주님이 뭔 상관이며 ‘사람 사는 게 그런 거지~주님은 없어’라고 말하곤 했다. 그리고 무슨 도깨비방망이에서 금은보화가 나왔다는 식의 성경말씀 강의를 매번 듣는 아빠가 답답했다. 대화의 끝이 종교로 이어지는 게 대화 장애물이기도 했다.

삼십 년을 살면 뭐가 달라지나 했는데. 부모를 대하는 법이 달라졌다. 거의 이십 년을 논리적으로 따지며 살다가 이제 그래 봤자 별수 없다는 걸 깨달아서 일까. 예전에는 부모 말과 행동에 대들거나 따박따박 지적을 했다면 어느 순간 ‘에혀 부모가 저렇다는 데 어쩌겠어’라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됐다. 부모가 식당에서 진상고객처럼 행동하면 예전에는 직원 앞에서 잔소리를 했다. 지금은 엄마가 하고픈데로 내버려두고 따로 직원에게 죄송하다고 말하는 식이다. 부모는 그냥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거지 이해하는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몇 주전 멀쩡하던 아빠가 쓰러져 일주일을 병상에 누워 지냈다.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아빠가 나와 동생을 불러 놓고 처음 한 말은 역시나 ‘주님에게 감사해야 한다’였다. 아마 1년 전에 나라면 ‘주님이 아니라 현대의학의 눈부신 발전 때문에 아빠가 회복을 했고, 혹여나 주님이 있다면 아빠를 힘들게 한 거 따질 거다'라고 타박 줬을 거다. 이번엔 잠자코 들었고 그런 말을 하는 아빠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한 5초간 주님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아빠가 아프고 난 다음 의식적으로 저녁마다 아빠 서재에서 뒹굴거린다. 어제도 유튜브를 보는 아빠를 관찰하다 귀를 쫑긋했다. 수학자 파스칼의 이야기였다. 논리적이고 천재인 파스칼이 어쩌다 비논리적인 종교에 진지했는지 소개하는 콘텐츠였다. 내용이 디테일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파스칼도 수학이나 사회문제는 조목조목 따졌지만  종교라는 건 그냥 받아들이는 거라고, 논리적으로 따지거나 해석을 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했다. 몇십 년을 일요일마다 성당에 가, 그곳에서 퍼지는 모든 말을 논리적으로 부정했는데 그게 다 헛짓거리였던 거다. 물론 이전에도 누군가가 말해주긴 했는데 어제는 좀 달랐다. 아빠의 딸로 태어난 것을 설명할 수 없고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것처럼, 종교도 그런 거란다.

유튜브 영상이지만 주님 이야기 앞에 다소곳한 아빠의 뒤통수를 보며 문득 아빤 왜 이렇게 종교에 의지할까 생각했다. 예수와 아빠는 닮아있다. 외벌이여서 그럴까. 아빠는 항상 본인이 무너지면 안 된다는 두려움 속에서도 삼십 년 넘게 자신을 희생하면서 살아왔다. 그렇게 꿋꿋이 나와 동생을 기르고 엄마를 지켜왔다. 사회생활하면서 아마 자주 비난받고 외로웠을 텐데 가족들에게 단 한 번도 내색 안 했다. 오히려 작은 일에도 잘 무너지는 나를 보듬어주고 기도해줬다. 그런 내가 아빠에게 따뜻한 말을 건넨 게 몇 번이었는지, 성경말씀처럼 위로와 사랑을 담은 말을 몇 번을 했는지, 아빠가 의지까지는 아니라도 걱정 안 시키는 딸인지 생각해봤다. 많이 미안했다. 아빠와 굿나잇 인사를 하면서 말했다.


‘오늘도 주님이 우리와 함께했어ㅋㅋ그지? 우리 가족이 건강한 건 주님의 은총 덕이야 크크’


정말 나답지 않은 말이었지만 아빠가 좋아했고, 그래서 나도 좋았다. 내일 아침 눈뜨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지만, 성탄일이 오기 전까지 의식적으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주님의 뜻이지’라고 생각하는 연습을 하기로 했다. 얼른 크리스마스가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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