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수수께끼를 푸는 공식
사랑은 뭘까. 잘 모르지만 사랑하는 이에게만 하는 행동이 있다. 바로 작고 사소한 일도 크고 소중한 일로 대하는 것.
업무가 한창인 오후 2시, 폰 부스에서 업무전화 후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때, 한 여자가 다급히 옆 칸 폰부스로 돌진했다. 마침 스피커폰을 켜고 전화하길래 무슨 업무인가 궁금해 귀를 기울였는데 맑고 청아한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14 나누기 3을 못하겠어.’ 순간 너무 화가 났다. 지금 고작 ’ 14 나누기 3’을 못해서 일 하는 엄마에게 전화해야 할 일일까. 근데, 뒤이은 차분한 목소리.
‘아하 그게 힘들지? 3 곱하기 무얼 해야지 14와 가장 가까워지지?’ 그 이후 5분 동안 14 나누기 3을 계산하기 위한 모녀의 모험 이어졌다. 단순 방정식을 풀기 위한 오분 간의 전화통화. 지친 업무 전화 후였지만 짧은 시간, 모녀의 이야기를 몰래 엿들으면서 가슴 한켠이 먹먹했다. 엄마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입사 초반, 근무시간엔 항상 예민했다. 한 번은 분명 내가 업무시간인걸 알 엄마의 전화가 여러 통 남겨져 있었다. 불안함에 다시 전화를 했는데, 백화점에 왔는데 어쩌고저쩌고 하는 바람에 확 화를 내버리고 말았다. 지금 업무시간인 거 알면서 고작 시시콜콜한 걸로 전화를 하면 어떡하냐고 말이다. 집에 와서도 화가 나기도 하고 서운해하는 엄마에게 업무 도중에 개인적인 전화를 하는 상식 밖의 일이라며 몰아세웠다. 그때 시뻘게진 눈을 하고 울던 엄마. 그리고 그 이후로 엄마는 업무 중 절대 전화를 하지 않는다.
폰부스에서의 모녀의 전화를 듣고 불현듯 어렸을 적, 일터에 간 부모님에게 시시때때로 전화한 기억이 스쳤다. 회사 전화여서 다른 회사 동료가 돌려받은 적도 있었고, 전화를 받을 때까지 전화를 한적도 있다. 전화를 해서 물은 것은 '언제 오냐', '동생이 짜증 나게 한다' 뭐 요약하자면 심심해서 전화했어 식의 용건이었다. 그런데도 부모님과 동료 회사분들이 밝게 받아주고 일 중이니 기다리라고 상냥하게 말해다. 아마 그때도 지금의 나처럼 업무는 항상 바쁘거나 지쳐있었을 텐데 딱 20년이 지나서야 그때 부모가 나를 위해 가쁜 숨을 고르며 눈치 보이지만 애써 차분히 전화를 받았다는 걸 알았다.
14 나누기 3의 답은 뭘까. 오늘 모녀는 폰 부스에서 그 모녀는 4라는 답을, 나는 ‘내가 참 나쁜 딸’이라는 답과 사랑은 '하찮은 문제도 큰일처럼 대하는 것'이라는 공식을 터득했다. 사랑은 상대에게 아무리 설명해줘도 이해를 못해고, 실수를 반복해 연습장만 축을 내도 다시 설명하고 차분히 함께 문제를 같이 풀어주는 것이란 걸 오늘 눈으로 봤다. 모녀의 전화가 끝나고 나서야 그 여자와 함께 폰부스에 나왔다. 뿌듯한 표정도 잠시, 종종걸음으로 사무실로 들어가던 워킹맘의 표정을 보면서 20년 전 우리 엄마의 모습을 보는듯해 마음이 많이 저렸다.
오늘은 일이 많은데도 칼퇴를 했다. 오늘 사랑의 공식을 터득했으니, 어려웠던 문제를 풀 수 있을 거 같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어떻게 딸이 엄마에게 이럴 수 있냐'며 항상 나에게 서운해하고 새침한 엄마에게 그런 소리 말라며 몰아세웠다. 사랑의 문제를 못 푸는 이유를 엄마에게 이해햑 부족으로 넘겨버렸다. 엄마는 잘못이 없다. 오히려 현명하고 인내심이 좋았다. 오히려 내가 방정식의 공식도 모른 체 오답만 써왔다. 이젠 문제를 잘 풀 수 있을 거 같다. 오늘 집에서 작고 사소한 일들이 가득했던 엄마의 하루를 차분히 들어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