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어 죽지 않는 직장인이 되려면

변하기 위해, 의문이 아닌 질문을 하는 직장인

by 배추도사

우리 회사 리더들은 나를 바꾸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다. 하지만 어림도 없었다. 나는 글쟁이 이기 때문이다. 글을 잘 쓰려면 고집이 있어야 한다.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한 집착적인 탐구, 어떻게든 글 한편을 마무리 짓는 집요함. 여러 피드백 속에서도 나라는 기준을 잡으며 글을 수정해야 하기 때문에 고집이 필수조건이다.


그래서 리더들과 자주 충돌했다. 스타트업은 하나의 거대한 실험실이다. CEO가 가설을 세우면 직원 모두가 결과물을 일사불란하게 만들어 시장의 검증을 받는다. 스타트업에서 인재란 어쩌면 리더의 생각과 일치시켜 카멜레온처럼 재빠르게 결과물을 만들어오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난 그러지 못했다. 고집이 세니깐.


온갖 열과 성을 다하여 콘텐츠를 써가면 '왜 시킨 대로 하지 않느냐'라는 평가가 왔다. 리더가 생각한 대로 글이 나올 때까지 4~5번 수정을 했다. 그 과정에서 나도 대표도 지쳤다. 한 번만에 글을 완성할 수 없었던 데는 내가 옳다는 고집 때문이었다. 10년 넘게 글을 쓰며 좋은 글을 위해 지켰던 나만의 원칙들이 있었다. 이를 지켜 글을 완성했는데, 결과를 부정하는 말이 잘 이해 되지 않았다. 나중엔 반발심 마저 생겼다. 이럴 거면 왜 경력직을 뽑았는지 모르겠고, 차라리 직접 하던가 라는 생각을 글 쓸때마다 했다.


물론 대표와 옥신각신 하면서 완성한 글마저 별로였다. 내 기준엔 말이다. 그 글들은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첫 글이 몇몇 커뮤니티 방에서 읽어볼 만한 글이라고 회자가 될 때까지만 해도 대표가 운이 좀 좋다고 생각했다. 근데 이후에도 대표의 방식대로 쓴 글이 높은 조회수를 찍고, 회사 세일즈에 영향을 미치기까지 했다. 이게 3번째가 되자 내가 고집했던 원칙들이 파도 앞, 모래성처럼 아주 쉽게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좀처럼 변할 줄 모르는 내가 보였다.


나는 잘 변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내가 머리로 이해되거나 눈으로 목격하지 않으면 인정하거나 변하지 않는다. 반면 같은 회사에는 입사하자마자 빠르게 적응하고, 회사가 얼개설개 말한 것을 찰떡 같이 알아듣고, 결과물을 내놓는 동료들이 있다. 그들과 비교했을 때 나는 잘 변하지 못하고 고집 까지 세다. 그럼 난 앞으로 뭘 해먹고 살아야 할까? 위기감이 들었고 자연스럽게 어떻게 해야 빠르게 변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으로 이어졌다.


올해 목표는 오류를 인정하고 의견을 바꿀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다. 하지만 그 과정으로 가는 건 재밌다. 질문을 하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내가 원하는 데로 끌고 가기 위해 상대의 의견에 의문을 표했다면 요즘은 내가 기분 좋게 변할 수 있도록 열린 질문을 한다. 왜 그렇게 쓰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지, 왜 그런 기획을 하는 건지 상대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듣고 옳은 이야기를 했다면 의연하게 행동을 바꾸는 일. 꼭 내뜻대로 하고 싶은게 있다면 상대가 기분좋게 설득될 수있게 공부하고 논리적으로 말을 정리해본다.


요즘 회사에서 쓰는 글은 10년간 홀로 지켜왔던 고집을 버린 글들이다. 근데 그 글들이 마음에 든다. 매일매일 새로운 도화지에 동료나 리더가 한 말을 좀 더 고민해 문장을 조물딱 거린다. 그 글로 시장의 평가를 받고 새로운 글을 또 써본다. 이 기회가 큰 복이다. 무엇보다 더디지만 오류를 깔끔하게 인정하고, 상대의 논리를 이해하고 주체적으로 변할줄 아는 직장인으로 가고 있는 거 같아, 회사에서 잘리거나 글 쓰다 굶어 죽진 않을 거 같아서 안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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