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제품이 대중에게 닿으려면
"컨피던스 얼마예요?"
스타트업에 입사 초반, 대표가 회의 도중에 물었다. '컨..피던..스..? 음료수 가격을 왜 물어보지?'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어리바리했다. 컨피던스(confidence)는 스타트업계에서 세일즈 매니저에게 계약 성사에 얼마나 자신 있냐를 수치적으로 묻는 말이다. 최근 한 웹드라마가 스타트업의 사투리를 재미있게 연출해 화제가 됐다. 핏테스트, 리드, 싱크, 벨류에이션, 레벨업 등 스타트업 업계 사람들만 쓰는 사투리가 있다. 한글로 표현할 만한 언어가 있는데 굳이 외래어를 쓰는 이유가 궁금하던 찰나 대표가 강력 추천한 린스타트업이란 책을 읽었다. 그 책은 외래어 투성이라 어떤 문장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하나는 얻었다. 스타트업이 실리콘벨리에서 시작한 문화여서 자연스럽게 외래어가 많았다는 유추 정도.
그랬던 내가 이젠 '스타트업 사투리'가 편하다. 그래서 문제가 시작됐다. 내가 마케터이기 때문이다. 마케터는 소비자가 단박에 알아듣게 해야 하는데 아무도 내 말을 못 알아 들었다. 뭐 사실 나도 영어단어를 써가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예를 들어 내 직무조차 말이다. 회사의 개발자들이, 가족이, 친구들이 콘텐츠 마케터(contents marketer)가 뭐하는 일이냐고 물었을 때 말문이 막혔다. 처음에는 '콘텐츠 마케터, 느낌 딱 안오나?'라고 생각하며 대충 글 쓰는 사람이라고 얼버무렸다. 근데도 여러 개발자들이 계속 내 직무를 이해 못 하고 '그럼 아무 글이나 다 쓰는 거냐'라고 되묻자 '마케터'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콘텐츠, 마케터. 도대체 이 추상적인 두 영어 단어의 결합은 무엇을 뜻할까.
콘텐츠 마케터는 '전단지 만드는 사람'이다. 제품을 쉽고 유쾌한 언어로 소개하는 전단지를 만들어, 목이 좋은 곳에서 마구 뿌려대는 일, 그리고 얼마만큼 그 전단지로 영업이 됐는지 효율을 따져가며 개선한다. 근데 이 쉬운 말을 리드, 로그, 광고 세팅, UTM 등 어려운 단어를 쓰면서 '아니 왜 단박에 이해를 못 하지? 느낌 딱 들으면 모르나?'라고 상대의 센스를 탓하고 있었던 거다. 요즘 야근하면 개발자들이 다가와 뭐하냐고 묻는다. '네가 만든 제품, 전단지 만들고 뿌리고 있는데요'라고 설명해주니, 픽 웃으면서 '이게 포인트다! 이건 어때요?'라고 말해준다. 드디어 서로의 대화가 한 발 나아갔다.
최근 회사엔 큰 제품 업데이트가 있었다. 이름하여 '아웃바운드성 서포트 봇(outbound support bot)'. 그 제품을 잘 알리지 못했다. 억울했다. 열심히 자료도 쓰고, 촘촘하게 논리 흐름도 다 짰는데 홍보가 잘 안 됐다. 4월엔 우크라이나 사태도 있었고, 물가 상승에, 대선에 다양한 사건사고들이 있었으니깐 이라며 변명하고 있을 때 즈음, 스타트업 사투리 영상이 화제가 됐다. 도무지 'ㅋㅋㅋ'이 쌓인 댓글들을 보면서도 웃을 수가 없었다. 자료에 아웃바운드성 서포트 봇 단어를 본 고객은 바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생각하니 맘이 착찹해졌다. 열심히 설명하기 전, 대중의 단어를 조금이라도 고민했더라면 전단지를 좀 더 잘 쓰고, 좋은 제품을 더 잘 알렸을 텐데. 일을 안한걸 이제야 인정했다.
마케팅 직무는 애매하다고 생각했다. '제품이 좋으면 알아서 잘 팔리자나'라는 생각 때문이다. 근데 이번 프로젝트의 홍보를 계기로 나를 제품과 대중 사이의 톱니바퀴처럼 중간에 놓았다. 아무리 제품을 잘 만들어도 좋은 단어를 찾아내지 못하면 대중은 알아들을 수 없고, 스타트업 사투리를 써가면서 개발자들과 소통하지 않는다면 제품을 이해하지 못하겠지. 요즘은 알쏭달쏭한 외래어가 난무하는 회의 속에서 마음 한켠, '훗, 그렇게 말하면 사람들 아무도 못 알아먹어'라고 딴생각을 하며 스타트업 사투리를 낯설게 바라본다. 요즘은 꼭 하루에 한번 찬찬히 거리를 걸으며 단어들을 살펴본다. 헬스장 전단지에 쓴 단어, 무심코 켜둔 라디오에서 DJ가 하는 유쾌한 농담, 갓 창업을 한 우리 고객이 쓴 인터뷰의 녹취를 풀으며 단어를 수집한다. 익숙하고 쉬운 한글, 저잣거리의 날것의 단어가 더욱 귀한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