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자질과 신고는 다르다. 그러나 그 경계는 애매하다. 누군가는 고자질하지 말라고 말한다. 다른 누군가는 방관이야말로 비겁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상반된 주장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핵심은 그 사람의 마음에 있다.
신고는 선한 마음에서 비롯된다. 어떤 행동이 개인이나 공동체에 이롭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의미 있는 신고다. 그러나 고자질은 다르다. 고자질은 누군가가 혼나거나 불이익을 받기를 바라며, 심지어 그 과정에서 일종의 즐거움을 느끼는 데서 시작된다. 고자질은 남의 잘못을 들춰내는 데서 오는 만족감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다. 그 밖에 미숙한 정의감 때문일 수도 있고, 때로는 사회적 기술 부족으로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무조건 이르는 것일 수도 있다.
이 두 가지를 구분하려면 행위자의 내면적 동기를 알아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아이들의 마음속까지 들여다볼 수 없다는 데 있다. 아이들이 그러한 행위를 하는 이유를 알기 위해 교사는 그 행동의 맥락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판단을 내려야 한다.
고자질인지 신고인지 구분하려면 우선 지속적이고 신중한 관찰이 필요하다.
특정 학생이 사소한 상황에서 자주 이른다면 이는 고자질일 가능성이 높다. 사소한 문제를 심각한 문제로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면 이는 행동의 동기를 의심할 만한 이유가 된다. 그리고 대상 학생과 고자질을 당하는 학생 사이의 관계를 살펴보면 그 의도를 더 잘 파악할 수 있다. 교사는 이러한 맥락과 정황을 종합하여 판단할 수 있다. 직관이 중요할 때도 있지만, 가능한 한 객관적 근거를 바탕으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우리 아이가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려고 한 건데, 왜 안 받아주시나요?”
부모가 아이의 고자질을 '정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며 정당화하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고자질은 단순히 정직과는 다른 문제다. 교사가 고자질을 제지하는 것은 단지 아이를 지도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아이를 보호하고, 더 나아가 그 아이가 공동체에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고자질을 방치하면 그 피해는 결국 고자질을 한 아이에게 돌아간다. 친구들 사이에서 신뢰를 잃거나, 사소한 문제로 인해 소외될 가능성이 크다.
고자질과 신고의 경계를 아는 것은 아이들의 도덕적 성장을 위한 기회다. 교사는 아이들이 이 경계를 이해하고, 정의로운 선택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정의와 책임의 참된 의미를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