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친구 사이에 좋아하는 정도가 다를 때, 복잡한 문제가 생긴다. A는 B와 친해지고 싶지만, B는 A에게 큰 관심이 없다. B와 B의 친구들은 성향 차이로 A와 어울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급기야, A의 부모는 자녀가 ‘왕따’를 당한다며 학교에 문제를 제기한다.
이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A는 학급에서 혼자 남겨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더 간절하게 B에게 다가간다. B와 친해지면 자신도 자연스럽게 친구 무리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B는 A를 미워하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더 친하게 지내고 싶은 친구가 다를 뿐이다. 아이들 사이의 관계는 이처럼 복잡하고, 모든 감정이 서로 같을 수는 없어 어렵다.
명백히 폭력적인 의도로 왕따를 하는 상황은 아니라는 전제하에 더 논의해보자.
짝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해서 폭력이 되지 않듯, 친구 관계에서도 모든 감정이 상호적이길 기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학교는 사적인 공간이 아니다. 모두가 만족할 수는 없어도 누군가가 힘들어 하는 상황만큼은 최소화하기 위해 교사는 몇 가지 기준을 지도해야 한다.
첫째, 수업 중에는 누구도 친구끼리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 모둠활동이든 체육시간이든, 같은 반 친구로서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
둘째, 욕설이나 뒷담화, 비난 같은 폭력적인 행동은 용납되지 않는다.
이와 같은 몇 가지 최소한의 원칙만 지킨다면 누구와 어울릴지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선택이라고 본다.
하지만 관계라는 것이, 그리고 감정이라는 것이 이렇게 명쾌하고 쉽게 되지 않는다. 그리고 성향이 달라서 놀고 싶지 않은 것과 폭력적인 의도를 가지는 것이 잘 구별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래서 원칙과 별개로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노력해야 한다.
A는 B에게만 집착하지 말고, 다른 친구들과도 관계를 넓혀야 한다.
B는 학교가 함께 생활하는 공간이라는 걸 잊지 말고, 자신의 감정이 A와 같지 않더라도 A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 사회적인 가면을 조금은 쓰더라도 말이다.
A의 부모는 모든 문제를 ‘왕따’로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 어른들도 모두와 친해질 수 없는 것처럼, 아이들도 성향 차이로 인해 거리감이 생길 수 있다.
서로 한 걸음씩 양보할 때, 관계는 유지된다. 적어도 같은 반으로 지내는 1년 동안은 말이다.
교사는 오늘도 조마조마하고 아슬아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