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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칼들고 협박해서 교사가 된 것은 아니지만(누칼협)

칼보다 날카로운 현실과 마주한 교사들

by 그로잉 그로브

사람의 사고를 마취시키는 단어들이 있다. 몇 해 전 유행했던 ‘진지충’이라는 말이 대표적이다. 무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려고 하면 “너 진지충이냐?”는 말 한마디로 대화가 끝나버리곤 했다. 학생들 사이에서 특히 많이 쓰였던 이 말은 깊이 있는 사고를 단번에 가로막았다.

비슷한 맥락에서 ‘누칼협’이라는 단어도 있다. “누가 칼 들고 협박했냐?”는 식으로, 문제의 심각성을 깎아내리는 말이다. 교육 현장에서 “이런 부당함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여도 “누칼협” 한마디면 끝이다. 논의의 장이 무너지고, 정당한 문제 제기가 허공에 흩어진다. 이런 말을 쓰는 사람들과는 애초에 대화할 필요가 없다. 이들은 단어로 사고를 마취시킨 뒤, 자신이 이겼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얼마 전 또 한 명의 교사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렇다. 교사가 되라고 누군가 칼을 들고 협박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교사는 인간의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까지도 책임지기를 강요받는다. 민원에 시달리며 정신과 치료를 전전하기도 하고, 근거 없는 의혹만으로 직위 해제를 당해 생계마저 위협받는다. 경찰서와 법원을 오가며 소송에 휘말리고, 사비로 변호사를 고용해야 한다. 결국, 이런 압박 속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교사도 있다. 이처럼 가혹한 현실을 마주하는 직업이 또 있을까. 떠오르지 않는다.


현실을 모른 채 “누칼협” 같은 말로 상황을 비웃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똑똑하고 젊은 교사들은 탈출을 시도하고, 유능한 베테랑들은 퇴직으로 교직을 떠난다. 교직에 남은 사람들은 진상을 마주할 날이 오지 않길 바라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인간의 의지와 관계없이 자연재해처럼 찾아온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새로 유입되는 유능한 교사도 줄었다. 심지어 수능 6등급 학생이 교대에 입학했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물론 성적이 훌륭한 교사의 자질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확률의 문제다.

과거, 학창 시절에 성실히 공부하여 지적으로 우수했으며, 스스로 절제, 성실, 인내 등을 익혔던 사람들이 교직에 발을 들이던 시대는 이제 끝나가고 있다. 그 결과, 학생들이 배울 수 있는 모범이 될만한 사람을 만날 확률이 줄어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는 여전히 아이들이 선망하는 직업이다. 아이들이 교사의 현실을 모르기 때문일까.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수도 있고, 생계가 위협받을 수도 있으며, 법적 송사에 휘말릴 수도 있는데...

그리고,

자살에 이를 수도 있는데...


그래도 교사가 하고 싶니? 누가 칼 들고 협박한 것도 아니라면 말이야...


그러나 나는 더 큰 희망을 품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다시금 교사를 꿈꿀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똑똑하고 성실하며 아이들에게 모범이 되는 교사들이 다시금 교육 현장으로 돌아오기를.

그리고, 교사라는 직업이 존중받는 사회로 바뀌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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