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혹은 주말에 연락을 하는 학부모가 있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교사의 사명감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작년 선생님은 받아줬는데, 왜 선생님은 안 받아주시나요?"라고 따지기도 한다.
하지만 묻겠다. 도대체 근무시간 외에 연락을 해야만 할 만큼 급박한 일이 무엇인가? 나와 주변의 교사들은 단 한 번도 그런 긴급한 사례를 본 적도, 겪은 적도 없다.
정말로 위급한 상황이라면 112나 119를 찾는 것이 옳다. 교사가 위급 상황에서 무슨 도움을 줄 수 있겠는가? 112나 119에 연락할 일을 교사에게 연락하는 것이야말로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들은 왜 이러는 것일까? 바로 '경계'의 개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업무 시간과 사적 시간 사이에는 분명한 선이 있어야 한다. 이는 단순히 교사와 학부모 간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직업에서 지켜지는 상식이자 예의다. 퇴근 후 은행 직원이나 동사무소 공무원에게 전화를 거는 사람은 없다.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독 교사에게는 그런 경계가 쉽게 무시된다. 교사의 개인번호를 당연하다는 듯 요구하는 사람이 있다.
경계의 개념이 부족한 학부모는 본인을 중심에 두고 본인의 스케줄에 맞춰 행동한다. 스케줄이 바빠서 이제 연락한다고 말하며 교사의 사적인 시간을 침범한다. 또는 내일 아침까지 기다리기에는, 월요일까지 기다리기에는 귀찮아 할 말을 새벽이든, 저녁이든, 주말이든 상관없이 전달한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이기적인 행동이다. 상대의 시간과 사생활을 고려하지 않은 행동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친척 중 누군가가 돌아가셔서 등교하기 어렵다는 소식을 교사에게 전해야 한다면, 그것이 왜 새벽이어야 하는가? 본인이 그 소식을 새벽에 알게 되었더라도, 다음 날 아침 문자나 전화로 전달해도 충분하지 않은가? 또 다른 예로, 학생이 아파서 결석해야 한다면 이것 역시 주말이나 저녁 늦게 전할 이유가 없다. 다음 날 아침 근무 시간에 맞춰 연락하면 될 일이다.
이러한 행동의 근본적인 이유는 간단하다. 이런 학부모는 자신의 편의를 우선시하며 행동하는 것이다. 자신의 스케줄에 맞추고, 자신의 걱정을 먼저 해소하기 위해 교사의 경계를 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교사의 근무를 연장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더 나아가 이러한 학부모는 종종 아이를 핑계로 교사에게 죄책감을 유발하려 한다. "아이를 생각하지 않는 거냐", "교사의 사명감이 부족하다"는 말로 교사의 양심을 겨냥한다. 하지만 아이를 위하는 행동과 교사의 사생활 침해는 별개의 문제다.
교사의 사명감은 근무시간 동안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퇴근 후에는 교사 역시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할 권리가 있다. 이를 침범하는 것은 예의도, 상식도 아니다.
이제 많은 교사가 개인 번호를 공개하지 않으려 한다. 과거에는 많은 교사가 자신의 시간을 희생하며 학부모의 요구를 들어줬다. 그러나 그 호의가 권리로 인식되면서 결국 교사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업무 시간 외에는 연결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작년 선생님은 번호를 알려줬는데, 왜 선생님은 안 알려주는 거죠?"라고 묻기 전에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과연 나는 교사의 경계를 존중하고 있는가?
퇴근 후 연결되지 않을 권리는 교사에게도 당연히 필요한 권리다. 교사의 시간을 침범하는 것은 아이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중심적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
경계란 곧 예의이고, 상식이다.
학부모와 교사 모두 서로를 존중하려면, 그 경계를 지켜야 한다.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교사의 사생활을 침범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