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한 상황에서는 부모의 요청이 필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어려 어린이집에 다니는 경우, 장애가 있거나, 갑작스러운 사고로 돌봄이 요구될 때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상황에서조차 이런 요구가 반복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아이가 성장하며 배워야 할 것은 스스로를 책임지는 법이다. 모든 것을 대신 해결해 주려는 부모의 태도는 자립심을 뿌리부터 꺾는다. 준비물을 챙기지 않았으면? 부모를 통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친구에게 빌리거나, 선생님께 지도를 받으며 자신의 실수를 깨닫게 되는 것이 ‘성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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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사람들은 18세에 독립을 당연히 여긴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정서적, 경제적 독립을 준비한다. 서둘러 준비하지 않으면 냉혹한 사회에서 어려움을 겪을지 모른다. 이와 달리, 한국에서는 아이들이 부모의 과잉보호 아래서 자립심을 잃고 자란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부모의 보호를 기대하는, ‘몸만 큰 어른’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부모가 아이의 작은 실패를 막으려 들면 아이는 ‘책임감과 독립심’을 배울 기회를 잃는다. 준비물을 잊어버렸다면, 그날의 불편함을 기억하며 다음부터는 잊지 않으려는 동기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수업 중에 떠들었다면? 과제를 마칠 때까지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을 활용해 끝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이는 자신이 한 행동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법을 익힌다.
그런데도 부모들은 불편함을 제공하는 교사를 향해 “친절하지 않다”는 민원을 제기하곤 한다. 이는 교육의 본질을 훼손하는 행위다. ‘좋은 교사’란 즉각 개입하여 도움을 주기보다는 한 걸음 물러서서, 아이가 스스로 해결하도록 공간을 마련해 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모든 문제를 부모가 대신 해결해 준 아이는 나중에 책임을 질 줄 모르는 어른으로 자란다. 문제가 생기면 남을 탓하고, 심지어 부모를 원망하기도 한다. 이것이 올바른 교육인가?
교육이란 지식을 전달하는 것만이 아니다. 아이는 불편함과 책임감을 배워야 한다. 그렇기에 부모와 교사는 아이가 겪는 불편함과 작은 실패를 허용해야 한다. 그것이 결국 아이를 진정한 어른으로 키우는 길이다.
내가 자녀를 잘 키우고 있는지 스스로 의심스러울 때가 있는가?
자녀가 독립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며 건강하게 잘 크고 있는 것이다. 부모가 아이에게 남길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자립할 수 있는 힘’이라고 본다.
자신의 삶을 책임지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작은 불편을 허용해 보자. 아이가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며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 그것이 자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부모의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