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탁 F241. SID 수첩 커버
한국인이라면 살면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문장.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거 아니야?'
그러곤 다시금 생각해본다.
'그럼 안 되는 건가? 배꼽이 더 클 수도 있지 않나?'
지난해 이승희 작가의 '기록의 쓸모'라는 책을 필두로 '기록'이라는 키워드의 다양한 책들을 읽어가며, '나도 이렇게 시간이 흘러만 가게 두지는 말아야겠다'라고 생각했다. 남녀노소 모두 해가 바뀌면 나이 한 살 더 먹었다고, 늙어간다고 똑같이 말하는 사회 속에서 내 나이도 어느덧 먹을 만큼 먹어서일까. 얼마전에 있었던 일은 고사하고 어제, 심지어는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조차 가끔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다. 문득 '단기 기억상실증?'이라고 혼자 되뇌이지만, 그조차 잊어버리고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가곤 한다.
어쩌면 '기록'이라는 습관을 들이기에 명분이며 환경이며 최적인 시점이여서였을까. 서울로 잠시 여행 갔던 틈을 타 압구정 프라이탁 매장에 들러 메모를 위한 수첩을 샀다. 정확히 말하자면 메모 용지를 갈아 끼워넣을 수 있는 수첩 커버를 샀다.
그 가격이 무려 6만 6천원.
다이소나 알파 같은 매장에 가서 사면 몇 천원 남짓에 살 수 있는 손바닥 크기의 아담한 물건의 가격치고는 거품이 많이 꼈다. 물론 업사이클링의 선두주자라 할 수 있는 프라이탁의 브랜드 이미지를 나타내는 재질과 색감, 그리고 "F" 표시가 주는 감성 한 스푼을 얹었다지만, 결코 저렴하지 않은 가격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이승희 작가의 '기록의 쓸모'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이해하지 못할 이 소비에 대해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르겠다. 책에서 저자는 내가 구입한 저 수첩커버를 활용하여 어마어마한 메모 습관을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게 해준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용돈의 많은 부분을 '겨우' 수첩 커버에 쓰며 새로운 수첩을 얻고, 얇아진 지갑을 득했다.
의도적이었다. 내 스스로를 믿지 못한 탓이었다. 메모나 기록의 습관은 마치 아침 일찍 일어나는 일처럼 내가 살아온 수 년동안 그 중요성이 강조되어 온 행위임에도 그것을 잘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서점에 가면 '기록하는 법', '메모하는 법'과 같이 그것의 방법이나 노하우를 알려주는 고수들의 책이 즐비하다. 그런 책 몇 권 읽었다는 정도로는 내 결심의 경도를 가늠할 방법이 없어 선택한 방법이 저자를 따라서 거금의 수첩커버를 사는 일이었다.
분명 저 제품에는 속에 메모지 형태의 수첩이 포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내가 수첩 커버라고 언급하는 이유는 그 속의 그것은 비슷한 크기의 다른 제품을 끼워 사용할 수 있고, 그 가격은 배송비 제외 2~3천원 남짓이기 때문이다. 배송비보다 저렴한 속지도, 속지보다 훨씬 비싼 수첩 커버도 결국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다. 하지만 나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수도 있고, 특히 배보다 배꼽이 더 커야하는 상황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배보다 배꼽이 크든 작든 결과적으로 원하고자 하는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인데, 우리 주변사람들은 왜 그리도 그놈의 배꼽 크기에 관심이 많은지, 또 우리 스스로는 그 사람들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는지 한 번쯤은 되돌아볼 만한 일이다.
중요한 것은 결과다.
결과를 좋게 하기 위해 나는 내게 간택당한 그 배꼽 녀석을 오늘도 기록에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