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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정책의 본의(本義)와 인사의 원칙

24. 12. 14. (토) 공동 육아휴직과 경제생활 (2)

by 영글생

친한 친구가 있다. 대학생 시기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후 육아를 병행하며 어렵게 취업 문턱을 넘었다. 친구의 첫 아이는 초등학생이 되었고 그 집 둘째가 우리 집 둘째보다 1년 빠르다. 육아 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노라면 자신의 첫 아이 때와 비교하여 참 좋아졌단다. 지난 화에서 이야기한 '아빠의 달 육아휴직수당 제도'와 같은 정책의 수혜가 대표적이다. 당장 우리 부부만 하더라도 첫째에 비해 둘째에게 제공되는 지원 혜택이 더 늘어난 걸 느끼고 있으니까. 그런데 얼마 전 외출을 다녀온 아내가 새 소식을 전한다. 부부 공동휴직에 대한 새로운 정책이 도입된다고. 우리도 대상이 되겠네. 한 번 알아볼까.


지난 10월에 <공무원수당 등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령안>이 공포되었다. 육아휴직 수당에 대한 여러 규정이 변경되었는데 수당의 상한액도 인상되었고 수당의 일부를 공제하였다가 복직 후 돌려주는 사후지급금 제도도 폐지되었다. 그중에서도 우리 부부가 주목한 지점은 공동 육아휴직자에 관한 대목이다.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공무원의 경우 제6항에도 불구하고 육아휴직수당 및 육아기 근무시간 단축수당의 지급 기간은 휴직일 또는 지정일부터 최초 18개월 이내로 하며, 각 수당의 지급 기간을 합산하여 최대 18개월을 초과할 수 없다. 이때, 제2항 제1호 나목․ 제2호 나목의 “12개월째”는 “18개월째” 로본다.
1.같은 자녀를 대상으로 부모가 모두 육아휴직을 각각 3개월 이상 사용한 경우의 부 또는 모


간단히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법적으로 허용되는 육아휴직 기간은 한 아이당 최대 3년이며 그중 12개월 동안 육아휴직수당이 지급되었다. 그런데 이번 개정을 통해 부부가 공동으로 3개월 이상 휴직을 하면 수당 지급 기간이 18개월까지로 확대된다는 말이다. 개정령안의 ‘제안이유’에도 언급되었듯 부부의 공동 육아휴직을 장려한다는 취지가 또렷이 읽힌다.


공동 육아휴직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좀 적을까 한다. 우리 부부는 18개월 차로 두 아이를 낳아 기른다. 첫 아이가 나오고 모유 수유를 마치자마자 둘째가 생겼다. 서른둘에 결혼하여 서른셋, 서른다섯에 아빠가 되었다. 30대 초반, 한창 건강할 나이다. 그런데도 몸이 힘들다. 첫째는 평일 주간에 어린이집에 간다. 아내와 함께 가사와 육아를 나누어한다. 그래도 체력이 달린다. 두 녀석이 번갈아 떼를 쓰거나 아플 때면 넋이 나갈 것 같다. 함께 휴직하고 돌보지 않았더라면 어느 한 사람이 너무나 힘들었으리. 아니 둘째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육아휴직이 자유롭지 않은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은 결혼을 했어도 자녀가 없거나 어쩔 수 없이 하나만 낳아 기른다. 저출산의 문제가 국가적 의제가 된 오늘날 출산과 양육의 부담을 나누는 방향은 복지가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된다. 그런데 행정적 문제로 우리는 바뀐 정책의 수혜를 반만 받게 되었다.


이번 공동 휴직은 첫째를 대상 자녀로 6개월 17일 간 이루어지는 중이다. 따라서 둘째는 공동 휴직으로 인한 수혜를 받지 못한다. 둘째를 대상 자녀로 설정하려면 다시 휴직을 하거나 3개월이 지난 시점에 대상 자녀를 변경해야 한다. 교사는 학기 단위로 휴직을 진행해야 하기에 공동 휴직을 반년 더 하기란 경제적으로 정말 쉽지 않은 선택이다. 따라서 대상 자녀 변경을 위해 학교와 지역교육청에 문의를 넣었다. 답변은 불가. 휴직 중 변경은 불가하고 중도 복직 후 대상 자녀를 달리하여 재휴직의 방법을 거쳐야 하는데 중도 복직을 하려면 휴직 사유가 소멸되어야 한다. 인사 매뉴얼에 기재된 육아휴직 사유의 소멸 예시는 '유산, 자녀의 사망, 출산 등'으로 나와 있다. 따라서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한 중도 복직은 불가하다는 말이다. 애초부터 휴직을 신청할 때 서류상으로 대상 자녀를 달리하여 3개월 단위로 끊어서 신청했어야 한단다. 아니 10월에 입법 예고가 나왔는데 휴직원을 작성한 6월에 이를 어찌 예상한단 말인가. 억울하다.


그래서 청원서를 썼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법언도 있잖은가. 규정의 해석이 문제라면 협의 기구를 통해 심의를 해달라는 의도였다. 지역청 담당자에게 청원서를 보냈지만 답이 없다. 11월 내로 대상 자녀가 바뀌어야 복직 전까지 둘째를 대상으로 3개월이 채워지는데. 11월 마지막주까지 묵묵부답.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답은 전과 같았다. 청원서를 열어보지도 않았거나 읽고 덮어두었던 듯한 반응이다. 상급 기관인 도 교육청에 문의하기로 하였다. 담당 장학사를 찾아보니 마침 아는 형님이다. 예전에 지원단 활동을 같이 하던 교사 선배였는데 잘됐다 싶었다. 전화를 걸었는데 연말 인사 시즌이라 너무 바빠서 저녁에 통화를 하기로 했다. 밤 9시가 넘어도 퇴근하지 못하는 선배의 목소리에 힘이 없다. 사정을 꼼꼼히 다 듣고 나지막이 시작한 답변은 "좋은 대답을 해주지 못할 것 같아서 어떡하지"


이미 올해 초에 육아휴직자의 중도 복직 문제를 놓고 회의가 있었다고 한다. 인사에는 원칙이 중요한데 비슷한 요청이 여럿 있었다. 논의 결과는 '수당을 위한 복직은 불허한다'였다. 청원의 의도가 심의를 해달라는 것이었는데 이미 심의를 했다고 하니 결과와 별개로 미련은 안 남겠다 싶었다. 조곤히 설명하는 선배의 목소릴 들으며 마음을 달랬다. 물론 여태 입맛은 쓰다. 저출산을 극복하고 인구 정책을 장려하고자 정부에서는 수당을 지원을 확대하는데, 행정기관인 우리 청에서는 정부 정책의 취지에 공감하지 않고 소극적으로 행정 처리를 하는 게 아닐까. 교육행정기관에서도 적극 행정을 통해 교육가족의 어려움에 귀 기울여 줄 수 있을 텐데. 물론 우리 청 인사과 입장에서는 나 같은 개인이 보지 못하는 문제를 고려해서 원칙을 정했을 수도 있겠지. 그러니 여기에 쓰는 정도로 소심하게 속상함을 토로한다. 제대로 읽히지 못한 청원서도 아까워서 붙인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육아휴직 대상 자녀 변경 관련 청원서


[청원인 정보]

• 이름: 영글생

• 소속: 00고등학교

• 직위: 교사

• 연락처: 000-0000-0000


[제목]

육아휴직 대상 자녀 변경에 대한 청원


[청원의 배경]

저는 현재 배우자와 함께 육아휴직 중이며, 첫째 자녀를 대상으로 휴직하고 있습니다. 휴직 기간 동안 배우자와 공동으로 첫째 아이를 양육하고 있으며,최근 둘째 자녀의 양육 필요성이 증가함에 따라 육아휴직 대상 자녀를 변경하고자 합니다. 특히,최근 입법 예고된 부부 공동 육아휴직 사용 시 육아수당 지급 기간 연장(12개월에서 18개월) 정책의 취지에 부합하기 위해,휴직 대상 자녀를 첫째 둘째로 변경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규정상 "육아휴직 사유 소멸" 요건이 중도 복직의 전제 조건으로 설정되어 있어,이에 대한 재해석을 요청드리고자 청원서를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구체적인 정보는 아래와 같습니다.


청원인의 육아휴직 기간 : 24. 08. 13. ~ 25. 02. 28. (첫째 자녀 대상)

배우자의 육아휴직 기간 : 23. 03. 01. ~ 25. 02. 28. (각 1년씩 두 아이 대상으로 사용)

첫째 자녀의 생년월일 : 22. 00. 00. (만2세)

둘째 자녀의 생년월일 : 24. 00. 00. (만0세)


[청원의 이유]

1. 입법 예고된 정책의 취지 반영

지난 10월 30일, 「공무원수당 등에 관한 규정」 일부 개정령(안)에 대한 입법예고가 공고되었습니다. 부부가 3개월 이상 공동으로 육아휴직을 사용할 경우 육아수당 지급 기간이 18개월로 연장되는 정책은,부모의 육아휴직 사용을 장려하여 안정적인 육아 환경을 마련하기 위함입니다. 휴직 대상 자녀를 변경하지 못하면 둘째 자녀는 해당 정책의 수혜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이게 됩니다.


2. 육아휴직의 본래 취지에 부합

육아휴직은 자녀 양육의 필요성을 충족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현 상황에서 첫째 자녀는 3세 아동으로 어린이집에 재원 중이며 배우자와의 공동 육아를 통해 안정적인 돌봄을 받고 있습니다. 반면, 둘째 자녀는 현재 생후 7개월의 신생아로 현재 가정에서 보육 중이며 저희 부부의 이번 휴직이 종료되더라도 어린 나이와 아토피 질환으로 인하여 추가적으로 더 많은 살핌과 보호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육아휴직 대상 자녀를 첫째에서 둘째로 변경하면 입법 예고된 정책의 수혜를 받아 둘째 자녀를 위한 돌봄과 보호의 기회가 넓어지므로 육아휴직 대상 자녀를 변경해야 하는 합리적인 사유가 됩니다.


3. 판례를 통한 사유의 합리성 입증

대법원 판례[복직반려처분취소][2012두4852]에 따르면,사망이나 친권 상실 뿐만 아니라 육아휴직 중 출산 등의 사유로 기존 휴직 사유가 소멸된 경우,육아휴직을 종료하거나 변경할 수 있는 사례가 확인됩니다. 이에 비추어 볼 때,입법 예고된 정책의 등장이라는 상황 변화와 그 수혜 여부에 따라 첫째 아이의 양육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감소하고 둘째 자녀의 돌봄 필요성이 증가한 현 상황은 넓은 의미에서 첫째 자녀의 "육아휴직 사유 소멸"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4. 정책 변화로 인한 불가피성

저는 육아수당 지급 기간을 12개월에서 18개월로 연장하는 입법 예고가 발표(24.10. 30.)되지 않은 상태에서 육아 휴직원을 제출(24. 06.)하였습니다. 입법 예고가 발표된 것은 제가 휴직에 들어간 후 2개월 이상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만약 이 정책 변화를 사전에 알았다면,대상 자녀를 나누어 첫째와 둘째 자녀를 대상으로 3개월씩 나누어 휴직을 신청했을 것입니다. 현 시점이 육아휴직을 시작한지 3개월이 되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대상 자녀를 변경하면 도입 시기의 시차로 인해 수혜를 받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5. 교육청 규정 준수 여부

경기도교육청의 「2023 교육공무원 인사실무편람(중등)」 205페이지에서는 “복직과 동시에 대상 자녀를 달리하여 휴직 가능”이라는 규정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 규정은 중도 복직 여부를 별도로 제한하고 있지 않으므로, 중도 복직 후 대상 자녀를 변경해 휴직을 재신청하는 절차가 우리 교육청의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청원의 요청 사항]

1. 육아휴직 사유 소멸의 유연한 해석

정책의 본래 목적을 고려하여 부모가 자녀를 균형 있게 돌볼 수 있도록 육아휴직 사유 소멸 조건을 보다 유연하게 해석하여 "양육 필요성 감소" 또는 "다른 자녀의 양육 필요성 증가"를 해당 조건으로 간주해 주시기를 요청드립니다.


2. 육아휴직 대상 자녀 변경 허용

첫째 자녀에서 둘째 자녀로 육아휴직 대상 변경을 허용해 주시기를 요청드립니다.


[첨부 자료]

1. 「공무원수당 등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령(안) 입법예고」

2. 「대법원 판례_2012두4852」

3. 「2023 교육공무원 인사실무편람(중등)」


[결론]

지난 8월 13일부터 시작한 육아휴직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이 육아휴직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됨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수당이 지급되지만 기존 급여에 비할 때 현저히 부족하기에 특히나 부부가 공동으로 휴직을 하는 경우 그 어려움이 더욱 커지는 것 같습니다. 이에 추가적으로 공동 육아휴직을 이행하기가 어려운 형편입니다. 공동 휴직이 이루어지는 기간이면서 두 자녀를 대상으로 각각 3개월씩 공동 휴직이 이루어질 수 있는 시기를 고려하면 늦어도 11월 29일 이전까지 복직원 및 휴직원 제출 및 처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저희 가정의 상황과 정책의 취지를 고려하여 유연한 결정을 내려주신다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저출산이 국가적 의제가 되는 오늘날,자녀 양육을 위한 경제적 수혜가 저희 두 자녀에게 고루 닿을 수 있도록 널리 헤아려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2024년 11월 19일

청원인 영글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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