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만족스러운 이와 만족스러워하는 이
24. 10. 03. (목)
육아는 잠을 정복하는 전쟁이다. 잠을 이기지 못하면 전투를 끝낼 수 없다. 오늘 아침 우리 집에서도 지리한 소모전이 일어났다. 작은딸의 공습경보가 울린 새벽 5시로부터 2시간 후, 아빠 곁에서 깬 큰딸도 전장에 참전한다. 잠에 취해 엄마 품을 파고드는 녀석을 피해 아내 또한 잠으로 도망치지만 적진으로 후퇴하는 격이다. 문득 오늘이 공휴일임을, 그래서 어린이집이 열지 않음을 떠올렸다. "나가자 여보, 나가면 걷지만 여기 있으면 레슬링이야."
옷을 다 입혔는데 첫째가 똥을 눈다. 다시 갈아입히니 둘째 엉덩이에서도 소리가 난다. 열어보니 방귀다. 짐 가방을 챙기니 둘째를 보던 아내가 말한다. "여보 이번엔 진짜야." 열어 보니 또 방귀다. 애들 엉덩이만 바라보다 30분이 지나간다. 차도에서 킥보드를 타겠다는 첫째와 실랑이로 동네가 시끄럽다. 놀이터 앞은 방앗간이다. 참새가 된 유나는 놀이터를 누빈 후 그네만 20분을 타고야 발길을 옮겨 준다.
정릉천을 걷다 보니 고려대학교 근처까지 왔다. 근처에서 4년을 살았지만 별로 가 본 적이 없었다. 단군 할아버지가 오셨다는 날에 캠퍼스는 한산했고 구내 카페는 깔끔했다. 유나에게 빵을 먹이며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개인 학습이나 그룹 스터디 중이다. 이 건물 여기저기에서 학생들이 각자의 세계에 열중한다. " 역시 청춘이다. 낭만적이네. 부럽다." 아내의 말에 끄덕이다가도 멈칫한다. 나는 어땠지.
대학 시절 특히 3, 4학년 땐 늘 불안했다. 졸업이 다가올수록 불확실한 미래에 짓눌렸다. 이 길이 맞나. 내가 잘하고 있나. 초조함에 쫓겼고 삶이 안정된 선배들이 부러웠다. 아마 저 학생들의 자리에 과거의 내가 있었다면 지금 내 모습을 부러워했겠지. 시인 이상이 <오감도>에서 근대성에 의한 불안과 공포를 '무서운아해'와 '무서워하는아해'로 표현한 부분처럼, 문득 카페 안이 '부러운 이'와 '부러워하는 이'로 가득 찼다. 서로에게서 자신이 갖지 못한 것만 바라보는 삶. 그런데 이를 뒤집어 보면 우리는 각자 서로가 부러워하는 것을 가진 삶을 살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결국 둘째가 똥을 누었다. 아주 많이. 마침 첫째가 우유를 엎는다. 아내의 검은 바지가 옴팡 젖었다. 급히 남은 커피를 마시고 귀가를 서두른다. 외출이 길어질 줄 모르고 기저귀를 놓고 나왔다. 이날 애들 엉덩이만 6번을 씻겼더니 손에서 냄새가 가실 틈이 없었다. 이불 빨래로 세탁기가 분주했고 저녁밥을 다 먹지 못한 채 첫째를 재워야 했다. 그래도 뭐 어때. 놀이터에서 유나는 그네 실력을 뽐내며 함박 웃었고, 샌드위치와 베이글에 세상 행복했다. 이나도 오후 내내 굴러다니며 개인기를 뽐냈으며 우리 부부 또한 예정에 없던 아침 산책 후 맛있는 브런치를 즐겼다. 물론 집안일 틈틈이 수다도 떨었고. 아내의 오후 낮잠동안 나는 첫째를 안고 가볍게 하체 운동도 했으며 브런치 앱으로 글도 좀 썼다. 이 정도면 호강이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