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여름딸기 농부가 되려고 하는가

딸기 밭에서 나는 글을 씁니다 - 1화

by 성장하는 사자


'여름딸기'라는 말,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의 연간 딸기 출하량은 약 20만 톤.

그중 여름딸기는 단 2천 톤 남짓.

전체 시장의 1~2%에 불과한 작은 틈새다.


누군가는 말한다.

"오, 블루오션이네요."


하지만 나는 안다.

우리나라에서 여름에 딸기를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기후, 해충, 강수량, 일조량...

여름은 딸기에게 결코 쉽지 않은 계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이 쉽지 않은 길을 가고자 하는 걸까?


나는 경영학을 전공했고,

ROTC 장교로 군복무를 마친 뒤

대기업 공채를 통해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지금은 한 금융회사의 인사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표준적인 삶.

모범적인 커리어.

통계로 보면 정규분포 그래프의 중심점에 딱 걸친 인생.


하지만 그 안정감 속에서,

정년을 앞둔 선배님들과 인터뷰를 할 때마다

나는 종종 질문에 마주하게 된다.


"30년의 직장생활이 이렇게 짧을 수 있구나."

"그 다음의 삶에 대해,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구나."


어떤 분은 체념처럼 말한다.

"이제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결심했다.

나는 그렇게 살지 말자.

나는, 제2의 삶을 미리 준비하자.


물론, 준비되지 않은 삶이

누군가의 잘못은 아니다.


그분들은 모두

대한민국의 성장기를 이끌어온 주역들이고,

어떤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살아오신 분들이다.


다만,

우리나라의 대기업 시스템은

‘직업인’보다 ‘직장인’을 키워내는 구조이기에

그 이후의 삶을 미리 설계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다짐했다.

정년이 오기 전에,

누군가 퇴직설계를 해주기 전에,

내 삶의 두 번째 막을 내가 스스로 열어보자고.


그리하여 내가 꺼내든 꿈은

"여름딸기 농부'였다.


그렇다면 왜 하필 딸기일까?


그건 아주 사적인 이유에서 시작되었다.


내 아내가 딸기를 좋아하고,

우리 두 딸도 딸기를 참 좋아한다.

그런데 여름에는 딸기가 잘 보이지 않는다.

겨울에는 흔하지만, 여름에는 귀한 과일.


그래서 여름에도 먹을 수 있는

달고 예쁜 딸기를

내가 직접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왕 하는 김에,

더 제대로 해보고 싶었다.


스마트팜 기술을 접목하고,

직접 따보는 체험형 농장을 만들고,

카페와 연결된 6차 산업 모델까지 구상하게 되었다.


내가 선택한 땅은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의 해발 650m 고지.


이곳은 내 아버지가 태어나셨고,

지금도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시는 곳이다.

올해, 아버지는 81세가 되셨다.

하지만 마을에서는 ‘고령자’ 로 분류 하기가 어렵다


왜냐면 대부분이 70~80대이기 때문이다.

시골은 이미 오래전에 초고령 사회에 접어들었다.


그런 마을에서,

나는 다시 농업을 시작하려 한다.

생산가능 인구가 점점 줄어드는 세상에서

사람의 손길이 여전히 필요한 농업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로봇과 드론,

AI와 스마트 시스템이 아무리 발달해도

농업은 결국 ‘삶과 생명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아직 농부가 아니다.

농막도 없고,

비닐하우스도 아직 짓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매일 농부가 되어가고 있다.

원예, 종자기능사 시험을 준비하고,

PoC 기반 스마트팜 구조를 고민하고,

조금씩 내 농장의 모습을 그려나가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평창의 밭을 밟으며

“여기가 우리 농장이 될 거야”라고 말하면,

아직 어린 딸들이 이렇게 말한다.


“아빠, 여기서 딸기를 따면 진짜 맛있겠다!”


그 한마디에,

나는 다시 용기를 낸다.


나는 알고 있다.

이 길이 결코 낭만만 있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예산도, 노동도, 실패도

분명 나를 시험할 거라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길을 가고 싶다.


왜냐하면 이건 단지 ‘농업’이 아니라

나의 삶을 다시 ‘디자인’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믿는다.

딸기를 기르는 손길이

결국 나 자신을 기르는 일이 될 것임을.


아이들과 함께 심는 시간들이

결국 그들의 기억에 뿌리로 남을 것임을.


그리고 언젠가

지금의 나처럼

삶의 방향을 바꾸고 싶어 하는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가 조용한 나침반이 될 수 있기를.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서울에서는 직장인으로,

평창에서는 농부로.

두 세계를 오가며

나는 오늘도 ‘성장하는 삶’을 살아간다.


딸기밭에서, 나는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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