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밭에서 나는 글을 씁니다 - 9화
살아간다는 말과
살아낸다는 말 사이에는
아주 작은 간격이 있다.
하지만 그 간격은 삶을 가르는 결이 된다.
살아간다는 건
주어진 시간을 흘러가는 것이고,
살아낸다는 건
흐름 속에서도 나만의 중심을 끝까지 지켜내는 일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하루를 살아낸다는 표현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냥 지나쳐도 괜찮은 날이 있고,
아무 의미 없이 덮어도 되는 날도 있다.
하지만 어떤 날은,
도무지 "살아갔다" 고 말할 수 없어서
그저 "살아냈다" 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그런 날들.
기억한다.
내가 평창에서 고랭지 6차 산업을 꿈꾸며
어느 날 유명한 대표님을 찾아갔던 그날을.
그분은 이미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모두 겪고,
이제는 지역사회에까지 큰 영향력을 가진 분이었다.
내 비즈니스 모델을 조심스레 설명드리자,
그분은 이렇게 물었다.
"프로젝트로 할 거야?
아니면 삶으로 살아낼 거야?"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인 뒤, 이렇게 덧붙이셨다.
"프로젝트로 할 거면
앞으로 나한테 오지 마.
삶으로 살아낼 거면... 와도 돼."
그 말 한 줄이
나를 바꿔놓았다.
그 순간부터
나는 "삶으로 살아내겠다" 고 마음먹었다.
딸기밭이든, 회의실이든, 노트북 앞이든
어디에 있든 한 겹씩 나를 담아가겠다고 결심했다.
그 후로의 하루하루는
더 이상 "업무"나 "계획"이 아니었다.
그건 살아내는 일이었다.
살아낸다는 건
거창한 성취가 아닐지도 모른다.
쓰러지지 않는 것,
포기하지 않는 것,
무의미해 보이는 하루를
의미 있는 시간으로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게 바로 살아내는 일이다.
육체는 지치고,
마음은 종종 앞서거나 멈춰서지만
나는 여전히
살아내는 중이다.
이제는 "살아냈다" 는 말이
내 하루를 가장 솔직하게 표현하는 말이 되었다.
살아낸 날들이 쌓이면
그게 결국 내 삶의 방향이 될 것이다.
오늘도 나는
딸기밭에서, 회의실에서, 글 한 줄에서
하루를 살아냈다.
프로젝트가 아닌 삶으로.
그렇게 나는
오늘도 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