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치과가 너무 무서워

아이의 첫 신경치료

by 달초롱

치료 견적이 94만원이 나왔다. 앞서 갔던 곳에서는 57만원이 나왔었다. 아무래도 이제는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이미 내 눈에 조각난 치아가 보였고, 매 끼니를 챙길 때마다 음식물이 빈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다 내 탓인 것만 같았다. 1월 정기검진에서 문제없었던 치아들이라 3개월마다 오라는 정기 검진을 미뤘었다. 감기가 걸리면 안 된다, 예약 먼저 해야 한다, 주말에는 사람이 많아 오래 기다려야 한다, 돌아오는 주말은 쉬어야 할 것 같다 등 한없이 생겼던 핑계 많았던 과거들이 떠오른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이런 말이겠지. 왜 건강할 때는 그렇게 소홀하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상처가 생기고서야 지난날들을 후회하는지, 그리고 또 시간이 흘러 반복되는지.

서둘러 날짜를 잡아본다. 당장 치료가 시급해 보이는데도 오늘 간 곳은 일주일, 그나마 치아 한 곳을 치료하지 않아 조금 더 저렴했던 치과는 3주의 기다림 뒤에나 치료가 가능하단다. 이왕 기다리는 거 치아와 치과에 관련된 자료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홍수처럼 정보가 쏟아지는 인터넷을 뒤적거리다 진짜 전문의인지, 가짜 손님인지 의심되는 답변들 사이에 허우적거리다 책 한 권을 추천받았다. 현직 치과 의사, 김동오 저자의 '치과 의사도 모르는 진짜 치과 이야기' 책이다. 눈앞의 치료들을 앞두고, 가만히 앉아 책을 볼 여유가 없었지만 한번 넘긴 책장은 나의 입 속도 들여다보게 하였다.

나도 어렸을 적에 교정을 한 데다, 여느 아이들처럼 칫솔질에는 무관심하여 커서는 성한 이가 하나도 없었다. 아직도 치과의 기계 소리에 땀나는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이미 천으로 가려서 보이지 않는 눈을 더 질끈 감는다. 다니던 회사의 같은 건물에 치과 하나가 개원했다. 스케일링을 무료로 해준다며 홍보를 했다. 그 당시 스케일링은 보험이 되지 않아 비용이 꽤 들었는데 잘됐다 싶어 점심을 이용해 치과 의자에 누웠다. 가벼운 마음으로 다가갔는데 맙소사, 치료해야 할 충치들이 많아 약 15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들 것 같다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듣고 나왔다. 본격적으로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한번 더 확인하고 싶었다. 엄마의 먼 지인 중에 한 분이 치과 의사라 부랴부랴 예약을 잡았다. 결과가 너무 달랐다. 충치가 있는 건 맞는데, 당장 치료해야 할 이는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고친 것도 없어 검진 비용도 안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뒤로 치과는 아무 곳이나 방문하기 힘들어졌다. 동네에도 걸어 다니면 몇 개나 볼 수 있는 흔한 치과이지만 꼭 지인이 추천해 준 곳을 다니고 치료 폭탄을 진단하지 않는 곳이면 웬만하면 바꾸지 않고 다녔다. 그래도 온통 치아에 색이 칠해졌다. 대부분이 금인레이나 심하면 크라운으로 마무리되었다.

책 속의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사잇충치 외에는 충치 치료가 중하지 않고, 금 인레이 등을 씌우다 오히려 치아가 깨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충치보다 중요한 건 얼마나 많은 치아의 수가 살아있고, 치아 교합이나 잇몸이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무리하게 충치 치료를 하는 치과들이 양심이 없어 그렇다기보다는 전공에 따라 약간의 충치라도 제거하는 것을 목적으로 가르침을 배웠기 때문이고, 저자도 초반에는 환자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그렇게 시술을 했다고 밝혔다.

충치가 다시 깨끗한 이로 돌아갈 수 없지만 치료를 한 이도 다시 돌아갈 수 없을 터였다. 나는 다시 한번 새로운 치과를 수소문했다. 이미 깨진 치아는 크라운을 피할 수 없지만 다른 치아들은 어쩌면 치료를 조금 더 연기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어린이집 친구 엄마도 우리와 비슷한 경우였고, 처음에 진단받은 신경치료에서 단순 치료로 끝난 치과를 소개받았다. 예약이 어려워 주기적으로 빈자리를 확인하다 어린이집도 하루 쉬고 가게 되었다. 필요하다면 치료도 바로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이는 "여기도 텔레비전 있나요?" 하며 천진난만하게 따라왔다. 최근 치과에 갈 때마다 잠깐 입 안만 들여다보기만 하고, 장난감도 주고, 티비도 보여주는 게 좋았나 보다. 그 자리에서 바로 결론이 났다. 신경치료와 함께 크라운으로 마무리하기. 다행인 건 나머지 치아들은 그대로 두고 지켜보기로 했다. 세 군데의 치과를 돌아다니며 마음 졸였던 감정들이 감사함과 감동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마지막 과제가 남았다. 어른도 쉽지 않은 신경치료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한 지인의 아이는 웃음가스에다 몸통을 묶어도 난리 치는 바람에 엄마와 치과위생사분까지 아이를 붙잡고 치료를 마쳤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 와중에 치과 의사 선생님은 처음은 아직 잘 모르기 때문에 굳이 웃음 가스가 필요 없다고 했다. 나는 지레 겁먹고, 다리까지 후들거리는데 굳은 얼굴을 펴가며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데 아이는 담담히 해냈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치료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어디에도 의지하지 않고 엄마의 손만 꼬옥 잡아주더니 치료를 마치자 씨익 웃으며 은색 크라운을 자랑스럽게 보여준다. 생각보다 5살 아이는 강했다. 아직도 치과 하면 겁부터 내는 나를 돌아보게 해 주었다. 다음번 나를 위한 치과 치료에서는 나도 당당히 입을 벌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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