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더 놀고 싶어요
4살 영웅이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아파트 건물을 관통하는 입구로 친구와 함께 손잡고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다른 엄마와 잠깐 인사를 나눴다. 그게 다였다. 길게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니었다. 사람 많은 마트나 놀이공원도 아니고, 일주일에 다섯 번씩 매일 지나가는 그 장소에서 아이와 친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숨바꼭질이라도 하나, 엄마 목소리 들으면 나오겠지 두 아이의 이름을 번갈아 불러보았다. 해맑게 내 앞에 나타나거나 저 멀리 "네" 해주는 소리 없이 내 목소리만 아파트 숲에서 메이리 쳤다. 조금만 더 멀리 가보자. 아이들 특유의 키득거리는 웃음소리와 장난기 가득한 대화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그렇지 하며 달려가는데 서너 명의 좀 더 큰 아이들이 저 멀리서 지나가고 있었다. 이제 날이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세상의 색은 사라지고, 검은실루엣들만 보이기 시작하는데 아이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걸까.
30분 전까지만 해도 단짝 친구와 함께 모래놀이도 하고, 놀이터에서 한 바퀴 신나게 뛰어놀았다. 약속 시계가 울리고 내일을 기약했다. 아이들은 당연히 헤어지기 싫어했다. 한 번씩 함께 가는 "도서관에 가자, 파인애플 볶음밥 먹자.", 오늘은 안된다고 하니 이번에는 "그럼 집으로 가자!" 언제 입을 맞춘 건지 서로 확신에 차서는 의기투합했다. 아니, 막상 놀 때는 같은 공간에만 있을 뿐 놀이는 각자 하면서, 옆에 있다는 그 존재만으로도 즐거움을 주는 사이인가 보다. 그렇다고 한 주를 겨우 열기 시작한 월요일 저녁부터 손님을 맞이할 여유가 없었다. 그건 친구 엄마도 마찬가지였고, 우리는 단호하게 작별 인사를 건넨 참이었다.
아이들을 찾는 친구 엄마의 목소리도 한 번씩 들려왔다. 아니겠지 싶으면서도 점점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잃어버리고 몇십 년 동안 걸려 있던 실종 아이 현수막이 떠올랐다.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다. 아이가 두 명에다 집이 어딘지 모르니 부모를 협박하거나 양육 목적을 위한 유괴는 아닐 것이다. 매번 지나가는 길이니 길을 잃어버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행여 잃어버렸다면 작년에 해둔 지문 등록으로 생각보다 금방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아이가 익숙지 않은 바깥 어둠 속에서 엄마를 잃어버렸다는 걸 인지하고 엉엉 울고 있으면 어떡하지, 극한으로 치닫는 상상 속에서 아이를 어떻게 하면 찾을 수 있을지 겨우 이성을 붙잡고 있었다. 속절없이 시간이 흘렀다. 결국 경찰에 신고하고, 관리소에서는 아이를 찾는다는 방송을 하고, CCTV를 돌려보기 시작했다.
아이를 찾기 시작한 지 약 20분이 흘렀다. 전화가 울렸다. 아이들을 찾았다고 말이다. 친구 아버님이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말에 자전거로 동네를 한 바퀴 훑어보는데 우리 집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고 한다. 어린이집에서 우리 집까지는 성인 걸음으로도 10분 정도 걸리고,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 포함하여 4개의 차도를 가로질러야 되는데 다른 의미로 대단했다.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는 아이는 나를 보자, 울며 달려와 나를 안아주었다. 긴장 속에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이는 친구와 더 놀고 싶은데 안된다고 할까 봐 친구의 손을 잡고 달려왔단다. 그 와중에 빨간 불은 건너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며 왔단다.
친구네를 집으로 초대했다. 집에 오자마자 온 장난감들을 꺼내 바닥에 펼쳐두고, 두 시간을 더 놀다 웃으며 헤어졌다. 만족한 얼굴이었다. 친구 엄마와는 좀 더 자주 집에도 서로 방문하고 주기적으로 만남을 갖자고 했다. 영웅이에게는 다시는 어른들과 떨어져 먼저 가면 안 된다고 한번 더 주의를 주고 약속을 받아냈다. 오늘 밤은 좀 더 길게 아이를 안아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