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좀 구해주오
눈을 겨우 떴다. 옆방에서 자고 있던 남편은 이미 출근하고 떠난 시간이었다. 아직 한참 꿈나라 중인 듯한 아이의 다리를 주무르며 살살 깨워본다.
"오늘도 어린이집 가?"
"응. 오늘 수요일이야. 세 번 더 가면 주말이네"
일어나자마자 어린이집을 가는지부터 확인한다. 그러게, 왜 아직 수요일이지. 나에겐 주말이나 평일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데도 왜인지 평일이 달갑지가 않다. 오늘도 아슬아슬할 것 같다. 이 시간이면 아침 간식도 없이, 한숨 돌리기도 전에 활동에 들어갈 것이다. 서둘러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다. 한번 꼭 안아주고 기계적으로 나오는 "사랑해, 좋은 시간 보내."로 마무리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고요하다. 문을 모두 꼭꼭 닫은 집 안은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도 용납하지 않는 것 같았다. 터덜 걸어가며 거실의 창문을 바라본다. 한 여자가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는 환영이 무한 반복되고 있다. 여기 5층이라 뛰어내려도 생명에 지장이 있을지 의심되는데도 멈춤이 없다. 거울을 바라봤다. 목에 자잘한 붉은 자국이 남았다. 어젯밤은 정말 참을 수 없었다. 기저귀 떼는 연습을 시작한 아이가 연달아 두 번을 팬티에 실수를 했다. 나는 주는 사랑이 많은 자상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별 것 아닌 일에 아이를 상처 주고, 불안의 씨앗을 품고 사는 어른 되지 않기를 바랐다.
'근데 혹시 너는 일부로 그러는 거니? 나를 시험하는 거지?' 분노가 치밀었다. 끓어오르는 짜증과 화가 가슴을 쿵쿵 쳐댔다. 아이가 보이지 않는 방으로 숨어들었다. 눈에 보이는 대로 벽을 쳐댔더니 곧 손은 부풀어 오르고 주먹은 오므라진 채 펴지지 않았다. 소리 없이 엉엉 울었다. 요 근래는 계속 이 상태다. 하루가 시작되면 새로고침이 될 만도 한데, 렉에 걸린 것처럼 빠져나오질 못하고 있다. 급기야 남편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다.
"부디 나와 헤어져 줘라. 아이들도 네가 다 봤으면 좋겠다. 가끔 내가 도와줄 수는 있겠지만 다 데려가줘라."
남편은 언제나 나의 편이다. 친구들 모임에서 한 마디씩 돌아가며 남편 흉을 보면 나는 할 말이 없다. 겨우 아쉬운 소리 찾아 이야기하면, 오히려 그런 남편이 어딨냐며 내가 타박받는다. 누구와 결혼해도 잘 살 사람이다. 그런 그를 내가 붙들고 있다. 같이 암흑으로 끌고 가는 것 같았다. 모든 게 힘에 부쳤다. 첫째 아이는 5년 동안 겨우 숨만 쉬고 있었고, 홀로 지내는 친정 엄마는 고치지 못하는 병을 앓고 있는데도 자식들은 무관심하다며 한 번씩 하소연을 하셨다. 내가 손쓸 수 있는 일은 없어 보였다. 하루가 무기력하고, 지긋지긋하게 반복된다. 이렇게 나이 들다 나도 엄마처럼 병들고 쓸모없는 존재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삶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 후로 1년이 좀 더 지났다. 엉망이 된 나를 포기하지 않았던 남편은 외부의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조심스레 상담을 권유했다. 남편이 솔선하여 상담을 먼저 받아봤다. 본인은 마음에 들었는데, 혹시 나는 어떠냐며 물어본다. 그 비싸고, 수다스러운 상담을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뭐가 달라질까 싶었지만 남편과도, 내 삶에서도 마지막 발버둥이라고 생각하며 상담문을 열었다. 15회기의 상담 끝에 종결을 이뤘다. 아직 완벽하지 않았지만 괜찮았다. 나는 충분히 내 삶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사람이며, 실수하고, 힘들어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