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요리란
날이 저물고 아이가 막 잠들었다. 하루를 마무리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할 일이 하나 더 남았다. 따뜻한 이불속으로 들어가 핸드폰을 만지작 거린다. 내일 만들어야 하는 식재료들을 보는 중이다. 기본적으로 계란, 두부, 우유가 집에 남아 있었나 확인해 본다. 메인 요리로는 닭날개를 장바구니에 넣어 주고, 특가 상품이나 마감 세일 목록도 한번 훑고 나면 최소 주문 금액이 금방 채워진다. 재빠르게 결제로 넘어가야지, 욕심부리다 마지막 재고들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면 김이 빠진다. 전날 밤에 이렇게 누워 주문을 넣고 나면 내일 아침에 받아 볼 수 있는 세상이라니 너무 좋지 않은가. 물론 물건을 직접 보거나 맛보기 코너에서 즉흥적으로 고르는 재미가 없어 아쉽지만 살 것만 바로 사고, 시간도 아낄 수 있으니 이 무미 건조한 온라인 쇼핑은 계속될 것이다.
사실 요리는 내 전공이 아니다. 요리하는 것 자체가 싫은 건 아니지만 매번 다른 식단을 짜고, 누군가에게 먹일 음식을 만드다는 게 쉽지 않았다. 아이와 남편에게 맛있는 식사를 차려줘야 된다는 강박 때문에 시작 전부터 머리를 쥐어짜고, 긴장하고, 퇴근 시간에 맞춰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한 요리를 내놓는데 종일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그나마 남편은 가리는 음식도 없고 잘 먹어주지만 입이 짧은 편이라 잔반이 조금씩 남는다. 아들은 아직 어려서 그런가 정말 본인 입맛에 맞는 것만 먹어준다. 식사 전에 조금이라도 간식이 들어가면 먹는 양이 확 줄기도 한다. 어린이집에서는 뭐든지 잘 먹는다고 하는데, 나의 요리가 문제인 건가 의심도 해봤지만 요즈음엔 인터넷에 검증된 레시피들이 잘 나와있고, 종종 내 요리에 내가 감탄하기도 하니까 그건 아닐 것이다.
아침이 밝아 오고 있었다. 남편이 서둘러 나갈 준비를 한다. 옆에서 따뜻한 물 한 컵에 영양제를 챙겨준다. 이렇게 안 하면 도통 찾아 먹지를 않아서, 오래 같이 건강하게 살아야 되니까, 좋은 게 좋은 거다. 아침식사도 하면 좋은데 20년 넘게 아침을 규칙적으로 먹어본 적이 없어 그런가, 오히려 먹으면 소화도 안되고 하루가 처진다던가, 어쩔 수 없이 베이글이나 떡이라도 손에 쥐어준다. 남편이 가고 나면 아이와 둘이 아침 식사를 한다. 아이가 더 어렸을 때는 한상 차림은 오래 걸리기도 하거니와 막상 차려도 쌀밥에 대한 애정이 없는 아이인지라 나도 좋아하는 떡이나 빵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다. 한국 사람은 밥심이라는 옛날 통념에 매번 마음이 무거웠다. 커가면서 하나씩 먹을 수 있는 게 늘어가는 아이에게 맞춰 이제는 간단한 볶음밥이나 주먹밥을 아침 식탁에 올리는 중이다.
나는 왜 이렇게 먹는 것에 집착하는 것일까? 생각해 보니 결혼하기 전까지 아침을 굶은 적이 없었다. 외식도 잘 없었고, 하루에 세끼를 집에서 꼬박 챙겨 먹었다. 엄마는 일을 하러 나가셨는데도 아침은 항상 함께 했다. 주말에는 늘어지게 늦잠 자는 나를 그렇게나 깨웠다. 먹고 다시 자라고 들볶았다. 냉장고에서 꺼낸 어제도, 그제도 먹었던, 죄다 같은 반찬들이라 투덜 되면서도 한 공기는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문뜩 엄마의 요리가 그리워진다. 30년 넘도록 한 지붕 아래서 딸에게 한결같이 밥을 챙기며 넣었을 엄마의 관심이, 엄마의 사랑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어젯밤부터 고민하며 식재료를 사고, 저녁에 먹을 요리를 오전부터 손질해 두고, 한 순간에 입 속으로 사라질 음식들을 즐겁게 만들어본다. 나의 성가신 집착이 사랑이었음을 느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