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저 치질이에요"
대략 하루에 한 번, 주기적으로 고통이 찾아왔다. 밥을 맛있게 많이 먹은 날은 하루에 두 번, 하루를 건너뛰는 날은 그다음 날 두 배의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계속되는 고통을 견디다 못한 살이 삐죽 얼굴을 내밀었다. 다행히 그 아픔은 며칠 뒤 사라졌고, 튀어나온 얼굴만 들어가면 되는데 도통 다시 들어갈 생각을 안 한다. 어떻게 할까 혼자 고심하다 그대로 두었다. 어차피 내가 입 닫고 있으면, 나밖에 모르는 일 아닌가.
몇 개월이 지났다. 그 얼굴은 아직도 무심히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잊고 지낼 때도 많았지만 볼 일을 보고 나면 그의 존재가 계속 신경 쓰였다. 우리 아가들 응가 닦아줄 때 빼고는 타인도, 내 것도 딱히 볼 일도 없고, 궁금하지도 않은 부위인데 말이다. 그래도 이렇게 방치할 수는 없었다. 무언가 손을 쓰지 않으면 그 얼굴과 계속 함께 살아야 할 것이다. 나중에 나이 들어 다른 일로 병원을 간다거나, 아니면 죽어서라도 염습하다 그 얼굴이 발견될 수도 있을 것이다. 너무 멀리간 생각이긴 하지만, 내 몸의 일부를 병든 채로 둘 순 없었다. 가자! 병원으로.
결심을 하고도 실제 병원 가는 날은 조금 더 미뤄졌다. 처음엔 어느 병원을 가야 될지 고민되었다. 큰 병원이 좋은지, 수술 건수에 집착하는 병원은 아닌지, 여의사에게 맡길지, 만약 수술까지 간다면 너무 멀리 가도 안될 터였다. 괜히 쉽게 병원 갔다가 하지 않아도 되는 수술을 하게 되는 건 아닌지, 당연히 의사가 전문의이지만 나 또한 기초 지식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치질에 대해서 검색도 해보고, 후기도 살펴봤는데 아무래도 실제 사례가 궁금했다. 치질 수술 경험이 있는 친정 엄마와 친구 한 명의 의견을 들어봤다. 근데 수술을 해봤자 또 재발한다던지, 수술 이후 더 극심한 고통이 찾아온다던지,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포함됐지만 그래도 지금은 잘 살고 있다는게 결론이었다.
드디어 병원에 갔다. 다행히 바로 수술 이야기로 빠지지는 않았다. 그 얼굴의 정체는 상처가 난 뒤, 아물며 생긴 덧살이었다. 없는 살이 생긴 거였으니 인위적으로 제거하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을 존재였던 거다. 상처가 생겼을 때 바로 병원으로 나섰다면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약 두 달간, 관련 약들을 먹고 좌욕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살면서 이렇게 내 항문에 관심을 가져봤던 적이 있던가. 반신욕도 귀찮아서 안 하는데, 매일 뜨뜻한 물에 엉덩이를 달래주었다. 건강할 때는 미처 몰랐던 내 몸 구석 소중하지 않은 것들이 없구나. 늦게나마 보살펴 본다. 미세한 진척은 있었지만 불규칙한 습관들로 내 관심이 멀어지면 다시 돌아올 치질이라 고민 끝에 결국 수술까지 진행되었다.
이틀 정도는 절대 안정을 취하느라 남편이 대신 아이의 하원을 맡아주었다. 나를 못 본 어린이집 친구 엄마들이 궁금해했다. 다른 질병과 다를게 무언가. 텔레비전에서도 박 모씨, 노 모씨 등 웬만한 연예인들은 다들 치질 한 번씩 걸려서 고생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하지만 다른 주변 사람들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고 차분한 목소리로 "저 치질 걸렸었어요..". 이런 이야기를 자기한테 해도 되냐며 당황하는 엄마들도 있었고, 지금은 괜찮냐고 걱정해 주는 그 엄마도 얼굴은 조금 달아올랐다는 것을 안다. 이제는 쉿!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다 지나간 이야기이고, 그 얼굴은 내 엉덩이에서 사라졌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