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귀는 즐거움

나도 책과 사랑에 빠질 줄 알아

by 달초롱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잠시 잊고 있었던 아이의 목도리와 장갑, 외투 주머니에는 아직 덜 달궈진 핫팩을 한번 더 흔들어 넣는다. 언제 첫눈이 내린 지도 모르게, 가을인지, 겨울인지도 모를 따뜻한 날씨에 아이는 놀이터에서 해가 질 때가 놀던 요즘이었다. 옷을 아무리 껴입어도 몸이 움츠려드는, 그래서 한없이 게을러지고 싶은 겨울이라 아예 안 오는 건 어떨까 넌지시 물었지만 기어코 차가운 북서풍은 쿵쿵, 문을 두드린다. 밤이 와야 아침이 오고, 겨울이 와야 봄이 오지 않냐고 말이다.


어젯밤. 초겨울에 나타난 '앵'벌이 모기 두 마리가 나타났다. 힘없이 잡힐듯하다 우리를 농락하며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는 모기 때문에 잠이 달아나 버렸다. 이 정도면 모기가 드디어 지능을 습득한 거 아니냐며 우스갯소리를 해대며 서로 낄낄거렸다.


남편은 책을 사랑한다. 에세이, 소설, 세계사, 일에 쓰일 전공책에서부터 나는 쳐다도 안보는 두꺼운 벽돌책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사랑에 빠졌다. 나는 책을 곁에 두는 사람이 이상형이라고 하면서 정작 일 년에 한 권을 정독할까 말까 했다. 돈 없는 신혼생활이 이어질 때는, 책만 읽는 선비냐며 타박도 했다. 그는 웃어넘겼다. 그 뒤로도 7년 동안 수많은 책들이 남편의 간택을 받았다.


나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던 것 같다. 독서가 좋다는 걸, 모든 분야의 대스승이라는 것을. 그래도 책과 가까워지는 게 쉽지 않았다. 여러 번의 시도는 있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한 장을 넘기는 속도가 너무 느렸다. 재밌다는 소설은 등장인물의 이름을 외우지 못해 아직 갈 길이 먼 책장의 앞만 다시 뒤적거렸다. 자기 개발서는 읽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아 괴리감만 커졌다. 왜 땄는지도 모를 한국사 자격증도 있으면서 역사책이 어려웠다.


그 사이, 남편은 저 멀리 올라갔다. 늘 차분했고, 하는 일에는 자신감이 넘쳤고, 물어보는 질문에는 모든 대답이 있는 것 같은, 대화가 즐거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로잘린 카터 영부인처럼 뛰어난 그의 옆에 어울리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리하여 올해 시작한 게, 한 달에 책 한 권 읽기였다.


내게 쉽게 곁을 내주지 않았던 책이, 이제 매일 나와 함께하고 있다. 아이에게 쓰던 타이머를 가져다 억지로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어디를 나가던 가방 안에 책을 넣어 두었다. 그런 나를 남편은 응원했고, 나를 바라보던 아이도 자연스레 곁에서 책을 봤다. 이제는 제법 즐기게 됐다. 뒷내용이 궁금해 내 자유시간이 오길 기다리다 참지 못하고 한 페이지만 슬쩍 넘겨 본다. 여전히 읽는 속도가 더디지만, 글자를 더 곱씹어 보는 중이라 여긴다.


겨울이 문을 두드리는 밤. 잠이 오지 않는 밤. 우리는 각자가 읽었던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남편은 구하말부터 광복까지의 역사를 속속들이 알 수 있다는 '토지' 책을 소개했다. 나도 질세라 옆에 있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수줍게 꺼내본다. 아직은 사귀는 친구 수준이 다르지만 남편은 흔쾌히 받아 주었다.


"3인조 도둑, 쇼타, 야스야, 고헤이는 결국 아키코 집으로 다시 돌아갔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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