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난파선 찾기
매주 금요일이 되면 여행을 떠난다. 한 짐 짊어지고 시작된 긴 여정. 집에 돌아오는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진다. 누군가가 온전히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고, 질책하지 않고, 애정 어린 눈빛과 목소리로 나를 다독여 준다는 것은 힘이 된다. 나를 똑바로 바로 볼 수 있는 힘. 본인조차 알고 싶지 않아 기억을 꽁꽁 묶어 바닷속 깊이 던져두고는, 버린 그 사실조차 잊어버린다. 시간이 흘러 가득 찬 난파선들로 물이 출렁거릴 때마다 왜 그런지는 잊어버리고 성난 파도만 일렁거리게 된다. 상담사가 수면 위에서 꼴깍꼴깍 겨우 숨을 쉬고 있는 나에게 손을 잡아준다. 산소통을 씌워주고 기꺼이 나와 함께 난파선에 숨겨진 진실을 탐험한다.
"한 시간 동안이나 무슨 이야기를 하지?"
아이가 아프고 나서, 그러니까 한 5년 정도는 누구와 길게 말을 섞어본 기억이 없었다. 전우애만큼 끈끈하다던 산후조리원 동기는 전화번호만 덩그러니 남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결혼할 때까지 이어졌던 우정도 어설픈 공감에 상처받아 그 연을 끊었다. 그렇게 나는 입을 꿰맨 외톨이가 되었다. 누워있는 아이의 주변만 맴돌았다. 2년 후, 뜻하지 않게 둘째를 맞이했다. 첫째 때 하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들이 이어졌다. 아이만 둘이지, 모든 게 처음처럼 서툴고 어려웠다. 그렇게 첫째와 우리 가족에게 일어났던 과거는, 돌이킬 수도 없었고, 현재진행형임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커다란 난파선이 되어 가라앉았다. 불현듯 떠오르는 장면을 애써 무시하고, 오늘만 바라봤다.
상담사와 어색한 첫인사를 나눴다. 나도 그랬지만 코로나로 인해 상담사는 얼굴 반을 덮은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보이는 곳이라고는 상담사의 눈뿐이었는데, 옆 창문에서 비치는 햇살 때문인지,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깊고 투명한 갈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르게 한 시간이 지났다. 상담사의 점심시간의 일부도 써버렸다. 가려진 얼굴 덕분인지, 상담사의 능력인지 알 수 없었지만 처음 보는 낯선 이에게 토하듯이 말이 쏟아져 나왔다.
상담사는 몇 마디 하지 않았다. 내 이야기의 한 덩어리를 다 듣고, 궁금한 부분이 있으면 질문했다. 어떻게 느꼈는지도 함께 물었다. 그게 다였다.
"지금까지 힘들었겠다."
그 말은 호들갑스럽지도, 어색하지도 않았다.
나는 원래 눈물이 많았으므로, 수순대로 눈물을 흘려보냈다. 한번 이야기에 물꼬가 트이자 '이제 내가 말할 차례야!', 존재 자체도 잊고 있던 숨겨진 난파선들이 나부터 찾아달라고 아우성거렸다.
문을 나선 나는 꽤 긴 여행을 한 것처럼 지치고 피곤했다. 해결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해결될 수도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아주 조금이지만 가벼워짐을 느꼈다. 차디찬 바닷속에서 따뜻한 위안을 받은 기분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난파선을 무시하며, 나의 삶을 부정한 채, 살았는지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잊었다고 해서 내가 겪었던 수많은 날들이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이제 난파선에서 구출을 기다리던 나를 마주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