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에 이사 왔어요

얼굴 없는 옆집과 선물나누기

by 달초롱

덜커덩. 아침부터 옆집이 소란스럽다. 외출하고 늦게 돌아오니 사다리차가 열심히 짐을 나르고 있었다. 이삿짐들 사이에 끼어 엘리베이터에 탔다. 나와 함께 탄 낯선 이는 같은 5층을 눌렀다. 정확히는 그가 누르고, 내 손가락은 잠시 허공을 머물다 돌아왔다. 땡. 나는 우리 집 현관문을 열기 전에 빼꼼히 옆집을 쳐다봤다. 옆집이 내게 작별 인사도 안 하고 떠나버렸다. 묘하게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강서구에 터를 잡은 지 벌써 2년이 되었다. 신혼부부 특별공급 분양에 몇 번을 넣었다 실패를 맛보고 잠시 잊혀졌다. 이제 2019년이 지나면 이 특공의 위력도 사라지고, 언제 친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기약이 없었던 터였다. 곧 다음 해로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임장도 안 해보고, 블로그와 영상에 의존한 채 마지막 '묻지 마, 청약'이 이루어졌다. 결과는 당첨. 새로운 삶에 설레기도 했지만 걱정도 되었다. 친정집까지는 끝에서 끝이고, 강서구라면, 글쎄, 김포공항 가는 길에 스쳐 지나가기만 했던 미지의 장소라고나 할까.


그래도 첫 우리 집이었다. 전세도 아니고, 노후된 구형 아파트도 아니었다. 누군가의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못질하고, 색칠하고, 설치할 수 있는, 자유를 느낄 수 있는 집이 생긴 것이다. (물론 새집에다 또 그다음을 위해 최대한 아끼고 있지만 말이다. 할 수 있지만 안 하는 것과 못하는 것은 천지차이다.)


등본에 입주일이 찍히는 날에 맞춰 선물을 준비했다. 나름 MZ 세대이니 전통적인 이사떡 대신 유명 제과점 쿠키 세트를 들고 두 옆집, 윗집, 아랫집을 찾아갔다.

'띵동'

뭐라고 인사를 건내볼까,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를 느끼며, 얼굴에는 어색한 미소를 띠고, 벨을 눌렀다. 입주 초기라 그런 건지, 집을 비우신 건지, 네 집 모두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나도 워낙 낯을 가리는지라 아쉽긴 했지만 안심도 되었다. 내게 핑계가 생긴 셈이다. 원래 주인이 있던 선물들이니, 쪽지를 남겨 전달하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500호예요.

앞으로 좋은 이웃으로, 즐거운 생활되시길 바랄게요."


그 뒤로 일주일 동안, 보답이 이어졌다. 궁금했던 얼굴 대신 귤, 쿠키 등이 현관 앞에 놓여 있었다. 감사히 맛보면서 이 선물들의 사연들을 상상해 본다. 고3 수험생 자녀가 있는 집이라던가, 간혹 멍멍 들리는 개의 주인이라던가, 아니면 우리 아이들 또래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들끼리 친구도 되고, 같이 음식도 나눠 먹으면 좋을 것 같았다.


정말 누가 살고 있는지, 어떤 분들인지 알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우리도 평일에는 해가 지기 바쁘게 잠을 청하고, 주말에는 새로운 동네를 탐색하느라 집에 있지를 않았으니 다른 집 사정이야 알 턱이 없다. 엘리베이터 땡, 문이 철컥하는 소리만 들릴 뿐, 눈 한번 마주치는 게 쉽지 않다. 우리가 2년 동안 쌓은 추억이라고는 몇 번의 어색한 선물 주고받기만 있을 뿐이었다. 시댁에서 준 감자나 옥수수 따위를 건네면, 그때도 주인이 없을 때가 많아, 문고리에 걸어두면 며칠 내로 답례품이 놓여 있었다.


그런 옆집이 말도 없이 이사 갔는데, 서운할게 뭐가 있나. 이사 다음날, 옆집 사람과 우연히 마주쳤다. 내가 아는 반가운 얼굴이었다. "안 그래도 인사하고 싶었는데, 바로 옆동으로 이사 가요. 잘 지내세요."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이제 아마도, 다시 마주치기 어렵겠지만, 마지막 인사를 서로 건네 본다.


띵동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옆집 입니다^^”

나는 또 괜한 설레임을 안고, 옆집 초인종을 눌러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상담이 진행 중입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