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3)

10회차 상담 중_감정 마주하기

by 달초롱

상담을 시작한 지 벌써 3개월이 흘렀다. 1주일에 한 번이었으니, 오늘로 10회째가 된다. 첫날부터 아주 신나게 떠들었던 기억이 난다. 열심히 이야기만 하고 왔는데 뭔가 가뿐해지는 이상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매번 갈 때마다,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하지? 딱히 새롭게 보고할 내용은 없는 것 같은데, 다음 주로 미룰까?" 고민한다. 예약 취소 가능 시간이 지났다는 것도 모르고.


가끔은 상담이 끝난 후, 같은 건물에 있는 만화카페에서 한두 시간 머물며 점심을 해결한다. 나에게 주는 작은 선물이었다. 사소하지만, 아주 큰 변화였다. 아이라는 생명을 탄생시킨 후로는 '나'라는 존재가 사라졌다. 나를 위해 시간이나 돈을 쓴다는 건 사치스러웠고, 가족들에게 더 도움이 되지 못하는 내가 실망스러웠다. 집을 떠도는 지박령이 되어 남편이 돌아오는 시간만 기다렸다. 저녁 7시에 맞춰 준비한 밥상의 김이 남편이 오기 전에 식어버릴까 초조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아이를 씻기고,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게 다였으니까,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놀이터에서 오래 놀아 아이를 아직 씻기지 못했다던지, 남편이 차가 밀려 고작 10분 늦는데 밥이 식어서 전자레인지에 다시 데워지는 날이면 짜증이 몰려왔다. 그런 아무것도 아닌 일에 정신을 못 차리는 나를 보며 또 화가 났다.


문제는 내가 언제, 무엇 때문에 분노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는 것이다. 갑자기 뿜어져 나오는 화가 나를 삼키면 며칠간은 어떻게 해야 이 생명줄을 끊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붙잡혀 있었다. 재미도 없고, 고통스럽기만 한, 미래에 대한 기대도 없는, 굳이 숨을 쉬고 있다고 매일이 똑같은 이 지루한 나날들을 견뎌야 하는 이유가 뭘까. 다행스럽게도 상담자가 나를 바로 봐주었다. '화' 안에 갇혀 있는 나를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실수해도 괜찮아. 완벽하지 않아도 돼.'


쭈그려 앉아 있는 어린 여자 아이를 만났다. 울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외로워 보이기도 한다. 얼굴을 묻은 채 내가 찾아오기를 기다렸던 것 같다. 언제부턴가 나 스스로 보다는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고, 그것이 쓸모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학창 시절 때부터 기억을 잘 못하고, 산수를 못하는 학습 능력을, 부족한 나의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 부단히 노력했다. 더 잘할 수 있다고 혼자 외롭게 자신을 괴롭혔다.


사람의 능력은 가지각색이다. 남들이 하는 걸 못한다고 해서 내가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부족한 부분을 메꾸려고 하는 노력이 쓸데없지만은 않다. 조금이라도 성장할 수 있었고, 덕분에 나의 한계를 알았으니까. 세상엔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일들이 많다. 아주 사소한 거라도 좋다. 지금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에 도전해 보고, 힘들면 쉬기도 하고, 가족들에게도 의지할 것이다.


이 날, 내가 고른 감정 카드는 '미안한, 외로운, 고통스러운, 답답한, 피곤한'이었다. 나의 '화'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게 아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조금씩 쌓여왔던 게 아닐까. 무시했던 나의 감정과 과거를 마주하자, 더 이상 성장하기를 포기한, 작고 여린 그 아이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같이 걸어 갈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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