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없는 일은 없어 (4)

11회 차 상담 중_엄마로서의 하루

by 달초롱

가족들이 모여 밥 먹는 저녁 시간이 좋다. 아침에 헤어져 각자의 봇짐에 새로운 이야기를 집어넣고 돌아와 밥상에 앉아 한 마디씩 꺼내본다. 보통 듣기만 하는 남편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내년에 영상 대학원 다니고 싶어."

"무슨 소리야? 지금도 바쁜데?... 아니다. 일 년이라도 젊을 때 배워야지. 바쁜 건 계속 바쁠 거니까."

숟가락에 얹어둔 잡곡밥을 입에 넣어 꼭꼭 씹어 삼키며 다시 말을 이었다.

"배우고 싶으면 배워야지. 대신 내가 힘들 때는 화낼지도 몰라. 그건 알아줘."

장난스럽게 말을 덧붙이고는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상담을 통해 내 감정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내가 뭘 느끼는지도 모르고 기분에 휘둘리고 있었다. 특히 심장이 요동치고 있을 때면, 주의 집중해서 어떤 감정인지 파악하는데 힘을 쓴다. 이번 대화에서도 내 안이 꿈틀거리는 걸 느꼈다. 말을 내뱉기 전에 공격적이고, 심술 난 나에게 시간을 줬다.


남편의 뜬금없는 선전포고가 당황스러웠다. 그의 부재로 내가 감내해야 할 시간들이 두려웠다. 하지만 그의 결심을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고 싶고, 배우고 싶었던 일, 심지어 재능도 있는 그가 경제적 어려움이나 시기 때문에 몇 번을 미루며 현실과 타협하지 않았던가. 응원해주고 싶었다. 동시에 화를 내고 있는 미래의 내 모습도 보였다. 짜증이 나는 상황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미리 알고 있고, 계속 대화를 나눈다면 서로에게 힘이 되는, 더 단단한 부부가 될 것이다.


열한 번째 상담 시간이 되었다. 계단 운동을 잘 못 하는 바람에 다리를 다쳐 병원을 다녔다. 육아종합센터에서 장난감을 빌리고, 도시락을 싸들고 아이와 문화센터에 들렸다. 도서관에서 아이 책을 빌리다 시간이 부족해서 늦은 점심을 한 수저 뜨다 하원을 하기도 했다. 하루가 바쁘게 흘러갔다. 화에 둘러싸여 무기력하게 누워있지는 않게 되었지만 보잘것없는 하루가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상담사는 아무 일도 안 하는 게 아니지 않냐며 의미를 부여해 주었다.


나는 '엄마로서의 나'를 낮춰봤다. 반대로 바깥 활동을 하는 남편이 대단하고, 부러웠다. 서로 가족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일들을 하고 있을 뿐인데, 어떤 일이 더 중요하거나 가치가 있는 일은 아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있는 덕분에 원하는 식사를 하고, 아이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마감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잘해왔다. 하찮다 여기면서도 매일을 지켜온 나, 중압감 속에서도 차분히 나아가는 남편, 그저 존재만으로 충분한 아이들, 모두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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