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선물이란

내 선물 좀 받아줘

by 달초롱

1년에 최소 두 번씩 만나는 친구가 있다. 내 생일 6월, 친구 생일 12월. 태어난 달이 거리를 잘 두고 있어서 적당히 보고 싶을 때쯤 만나 서로 자신의 인생사 이야기를 뱉어내기 바쁘다. 물론 sns나 메신저로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이게 바로 대면 만남의 즐거움이랄까. 오늘은 그 친구를 축하해 주러 가는 길이다.


아픈 아이를 돌보면서 어두운 긴 터널을 지났다. 세상에 나 혼자 상처받은 것처럼, 스스로에게 벌을 주는 것처럼, 새로운 사람뿐만 아니라 오랜 지인들과도 연락을 끊었다. 어떤 말로 입을 열어야 하는지 서로 난처한 상황에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나누는 나를 상상할 수 없어서. 그 와중에 어떤 위로도 없이 때때로 푸념도 하면서 관계를 붙잡고 있어 줬던 유일한 고등학교 친구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경상남도 진주에서 서울로 이사를 왔다. 어머니의 고향이기도 하고, 어렸을 때도 살았던 곳이라 이질감은 없었다. 진주에서 표준말을 쓴다고 종종 놀림도 받았으니까. 그 말투는 이미 변형된 사투리라는 걸, 쉬는 시간이 되며 깨달았다. "~했다" 면서 밝게 말꼬리를 올려 끝내는 어조가 나를 기분 좋게 간지럽혔다. 학기 중간이라 맨 뒷자리에 앉았는데, 앞자리에 이 친구가 있었다.


나는 반에서 5명 내외로 들어오는 작은 키였는데, 눈높이가 맞았다. 그 외에는 딱히 공통점은 없다. 다음 해에 그녀는 예체능반으로 갈 만큼 그림을 잘 그렸고, 악기도 잘 다뤘다. 참고로 나는 음치, 박치에 꾸준히 듣는 노래 취향도 없고, '아침 먹고 땡' 하며 그리는 해골이나 '동그라미, 육육삼십육' 하며 그리는 곰이 다다. 어머니가 주는 대로 옷을 받아 입던 나와는 반대로 꾸미기도 잘해서 자신의 굴곡 있는 몸을 멋지게 소화했다. 그런데도 기가 세지 않고, 뽐내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건 나를 표시 나게 좋아해 줬다.


작년에는 대놓고 선물을 골라보라고 요청했다. 선물 고르는 건 어려운 일이다. 상대방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 중에서 갖고 싶지만 본인이 사기엔 사치스럽고, 그렇다고 받기에 부담스러워도 안된다. 과거의 것과 중복돼도 안되는데, 20년이 넘었으니 이제 한계다. 낭만이 없긴 하지만 뭐가 필요한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알지 않은가. 그렇게 해서 손쉽게 결제만 해 넘긴 검정 구두가 작년 선물이었다.


올해는 묻지 않았다. 주고 싶은 게 생겼으니까. 작년 한 해 동안 내가 정말 만족했던 상담이 생각났다. 일 년을 마무리하는 의미로 받으면 좋을 것 같다. 내가 한창 상담을 받고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었을 때, 본인도 받고 싶지만 한 번은 아쉬울 것 같고 오래 하기에는 비싸다고 했었던 게 기억났다. 수다 떨러 가서 뭐가 이렇게 비싸냐고 할 수 있지만 내가 무대 위의 주인공이 되어 누군가 온 마음을 다해 들어주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가? 몸이 아프면 의사 선생님께 치료를 받듯, 마음도 돌봐줘야 한다.


예약을 하고, 만날 장소를 정하다 보니 입이 근질거렸다.

"너 줄 거 생각해 놨어."

"뭔데, 뭔데?"

말하다 중간에 끊기면 더 궁금한 법이다.

"내가 좋아하는 거야."


'너도 좋아할 거야'라는 말이 입 속에 머물다 사라졌다. 확신할 수 없었다. 내가 좋아한다고, 남도 똑같을까. 이래서 깜짝 선물은 못하겠다니까. 결국 털어놨다. 우려했던 방향대로 친구는 바로 거절했다. 편안해진 얼굴로 문을 나서는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며 최고의 선물이라고 우쭐해하고 있었는데. 아쉽다 못해 '좋은데 왜?!' 반감이 생겼다.


시간에 맞춰 다른 선물이 떠오르지 않아 딸기를 사들고 간다. 그녀가 원하지 않으면 좋은 선물이 될 수 없는 것일까? 사실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만나서 한번 더 이야기해봐야지.


좋은 선물은 받는 사람의 즐거움일까? 준비하는 사람의 만족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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