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첫 구독자님에게

겨울 휴가가 시작된 남편에게 쓰는 공개 감사 편지

by 달초롱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도 전에 작가가 된 건 어떻게 알고 찾아와 제 첫 팬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작 글 4개 올리고 못 쓰겠다고 포기하고, 5개월간 긴 휴재 기간에도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평일동안 매일 글을 끄적인지 한 달이 다 되어 가네요. 100개의 기록이 모이면 정말 사비를 털어 출판해 주실건지 그날이 기다려집니다. 내일부터 일주일 간 겨울 휴가라고 들었습니다. 한 해 잘 마무리하시라고, 감사의 의미로 공개 편지를 써봅니다. (이번에는 바로 공유하지 않으니, 꼭 휴가 전에는 읽어 보셨으면 좋겠네요.)



일주일 전부터 오늘은 널 위한 글을 쓰려고 비워뒀어. (글감 없어서 그런 거 절대 아냐.) 어제 계단 운동을 하다, 샤워를 하다, 너에게 쓸 편지가 하염없이 떠올랐어. 온통 네가 나에게 해준 것들이더라. 하염없이 나에게 주었구나.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며 왜 나에게 이런 불행을 주는가' 했는데, 바로 옆에 내 수호천사가 있었네. 안 보이는 척, 못 들은 척, 땅만 파고 있어서 미안해.


내가 언제 또 무너져 내릴지 모르겠지만 넌 다시 투정 없이 기다려주겠지. 일어나면 잘했다고 손 잡아주겠지. 그런 너는 한 번도 약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어. 우리가 첫 데이트 하는 날, 너는 나를 마음껏 사랑해 주겠다며,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다짐을 했고, 8년이 지난 지금도 그 약속을 지키고 있는 중이네.


우리 집도 그랬고, 주변에 흔하게 이혼하는 가정들을 보며 나 또한 언젠가 그 길을 가겠지라며, 언제나 널 시험에 들게 했어. 신혼부부 청약을 핑계 삼아 식을 올리고도 1년이 지나서야 불러온 배로 잡고 결혼 도장을 찍어도 너는 축하하자며 해맑게 웃어줬어. 끊임없이 상처 주는 말들에도 나를 비난하거나 화내지 않았지. 아이가 둘이나 있는데도, 잘못한 것도 없이, 이제 좀 살만해지나 했더니, 진지하게 갈라서자는 나를 붙잡아 줬지. 더 이상 자신이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며 같이 괴로워해 줬어. 전문가의 도움을 받자며, 먼저 상담을 받고 좋은 것 같다고, 행여 내 마음이 더 다치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천을 했어. 상담사는 아내가 먼저 찾는 경우는 있어도 이렇게 남편이 앞장서서 오는 경우는 흔치 않다며 대단하다며 널 인정해 줬지.


내가 대책도 없이 "회사 그만둬도 돼, 남들처럼 육아휴직 써." 공수표를 던지면, 너는 "괜찮아, 조금만 더."라고 대답해 줘. 일주일의 휴가 중 너를 위해 하루를 썼으면 좋겠다고 말해도, 나와의 데이트면 된다고, 그게 힐링이라고.


한 달이 넘도록 써온 브런치의 글을 공유하면, 한 번도 뻔한 답이 없어.


"힘 빼고 쓰니 글이 더 좋은 거 같아."

"이얼, 진짜로 치질 주제! 대단하네 ㅎ"

"나도 좋다, 이 번 거... 근데 계속 좋았어 ㅋㅋ"

"마음이 짠하네, 여보 쓴 글 보니 찰나의 먹먹함이 느껴지는데 후원 같은 거 해줄까"

"글이 점점 좋아지네, 기승전결이 딱 맞아!"

"오! 뚝딱 잘 썼네."

"오늘 글 좋다, 여보야, 따봉"

"제목 잘 짓네"

"요 주제가 등장하네, 시리즈로 이어지면 좋겠다"

"하트가 점점 많아지는 건 기분 탓인가?"

"진짜 별장 가고 싶어지는 글이네"

"좋다, 그러고 보니,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그거 생각난다."

"작가님 글 언제 올라오나 했는데, 이제 올라오네."

"오.. 마지막 문장 너무 멋지다, 여보. 매일을 지켜온 나."

"육아로 안 빠지고, 균형을 잘 잡았네."

"오늘 글은 감성인데?! 좋아!"


찾아보니까, 더 대단하네! 이 정도면 여보가 글 써야 되는 거 아닙니까? 혹시 출판하게 되면, '여보의 메모'도 같이 넣어주면 너무 좋을 것 같아. "그래줄 거죠? 편집장님!" 내 의욕이 사라질까 열렬한 1호 팬이 되었네. 오늘은 시간이 없다, 또는 뮤즈가 찾아오지 않아 도저히 못 쓸 것 같은 날도, 당신의 칭찬이 궁금해서 의자에 앉아 어떻게든 글을 뱉어 보려고 노력했어.


어제 저녁 시간이었지. 읽고 있는 책 저자가 넷플렉스 다큐를 찍은 걸 우연히 발견했다고, 신나서 떠들었더니, "이 내용도 써보면 어때? 요즈음 글을 써서 그런지, 책 요약도 잘하고, 말도 잘하는 것 같아." 라니, 나 잠깐 날아갔다 올게. 덕분에 본인도 글 쓰고 싶어 지는데, 한 편을 쓰기가 쉽지 않더라고. 오늘의 내 절박한 노력이 무의미하게 흘러가지 않게 진심을 다해 응원해 줘서 고마워.


몸무게가 10킬로나 불어서 서 있으면 배에 가려져 아래 발도 안 보이는 매력 없는 나를 변함없이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봐 주는 네가 좋아. 그래도 열심히 야채 주스에, 운동도 하니까, 리즈 시절로 돌아갈 테야! 식사 시간에 혼자 파프리카 뜯어먹고 있어도, 비웃지 않고, 약 올리지 않고, 협조해 줘서 고마워.


내 수호천사가 선물해 준 이 하루를 오늘도 고맙게 잘 쓸게. 농담처럼 후생에는 아빠로 태어나 주면 좋겠다고 말하곤 했지. 너만 좋다면, 다음번엔 내가 씩씩한 반려자가 되어 너를 지켜줄게. 이번 생도 너에게 최고의 여자가 되도록 할 거야! 항상 기다려줘서 고마워. (감사 인사를 몇 번이나 하는 거야?!) 우리 같이 가자. 그래야 둘이 네 다리로 오래가지.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가족들 지켜줘서 고. 마. 워. 마지막은 '언제나 사랑해'인 거 알지?


우리 겨울휴가 동안, 잔잔하지만 평화롭고, 별거 없지만 기억에 남는 하루들 만들어 보자. 그럼 오늘부터 시작!


P.S. 난 편지 끝에 추신이 좋더라. 한 수저 더 주는 기분이랄까. 작년에 이어 올해도 만화책을 준비해 봤어. 구입하고 한 달 넘게 숨겨뒀더니, 잊어버릴 뻔했지 뭐야. 책을 좋아하는 당신에게, 감히 글책은 추천하지 못하겠고, 이번에 그래픽을 방문하지 못하게 된다면, 이 그래픽 노블은 어떨까 하고. 학창 시절, 교과서와 만화책만 줄곧 읽은 모범생이 마련한 작은 선물을 받아 주시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작은 변화의 시작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