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행복한 생신 되시길
엄마, 67번째 생신을 축하드려요.
아직 한창인 나이 아닌가 싶다가도 흰머리 사이로 잔뜩 주름진 얼굴에, 목적을 잃고 방황하는 발걸음 사이로 "아프다, 아프다."라는 단어를 제일 많이 들을 때면, 내 가슴이 아려와. 엄마는 분명 너나 골골거리면서 할 말은 아니지라고 대꾸 하시겠지.
사실 지난 금요일에 휴가를 맞은 남편에게 공개 편지를 쓰고 뒤돌아서야 우리 엄마도 생일인데, 더 귀한 날인데 준비한 게 없다는 걸 알았어. 서운하시려나, 아니면 니 남편은 좋겠다 하고 웃어주려나. 그래도 엄마 생신이 크리스마스 이브라니, 덕분에 오빠 가족까지 모두 모여 파티하는 기분 좀 나겠다. 엄마가 좋아할 식사 메뉴도 짜뒀고, 외식할 장소도 예약해 뒀어. 부드럽고, 맵지 않고, 질기지 않은 것들로 말이야.
결혼 생활이 7년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누군가를 초대해 음식을 대접할 때면 긴장돼. 특히 엄마에게 선보이는 요리를 할 때는 더욱 그래. 그래서 그런지, 매번 잘하다가도 이 날만큼은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하곤 하지. 싱겁거나, 너무 익혔거나, 태웠거나, 그냥 맛이 없기도 하고. 그럼 엄마는 한마디 하시지. "이게 뭐냐?" 그럼 나는 더욱 주눅이 들었어.
어느샌가 나는 부족한 사람이 되었어.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 남편이 대단하다는 칭찬을 많이 했지. 실제로 그렇기도 하지만, 내 짝을 잘 만났다는 게, 내 인생을 잘 살고 있노라고, 안심하라는 뜻이기도 했어. 옆에서 듣던 엄마는 너도 못난 게 없는데 왜 그렇게 말하냐고 속상하다고, 오히려 화를 내셨지.
내가 정신적으로 불안하게 불우한 가정환경 탓인 줄 알았어. 그래서 은근슬쩍 상처 주는 말들을 내뱉었지. 나를 욕보이며 엄마를 괴롭혔어. 그게 얼마나 대수롭지 않고, 평범하다는 걸 모르고. 어려움을 이겨내야만 더 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더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여정이라는 걸 몰랐어.
나는 사랑받은 적이 없다며, 표현하지 않은 사랑은 모른다고 했었지. 근데 기억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엄마가 참 좋았어. 내 전부였고, 꼭 커서 돈을 벌어 엄마를 행복하게 해 줘야지 라는 다짐을 했었어. 그 마음의 싹은 바로 엄마의 사랑을 느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내가 엄마의 품을 떠날 무렵부터 엄마는 이름 모를 병에 시달렸지. 건강염려증이니, 정신병이니 해도 밤낮 쉴 새 없이 고통스러운 엄마는 유명한 병원들과 과들을 찾아다니며 항생제와 진통제를 달고 산지 벌써 7년이 넘었네. 보호자를 데리고 오라는 말에 엄마는 두려움으로 나를 찾았는데, 나 또한 첫째 일로 여유가 없었어. 병원이면 지긋했지. 예약 시간은 왜 있는 건지, 하염없이 내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다 마주한 의사는 한두 마디 말로 나를 상처 입혔어. 그럴수록 엄마도 내가 더 필요했을 텐데, 별일 아닌 일로 부른다며 못마땅해했지. 가족들을 다 대동하고 시간을 때우다, "어머니에게 힘드신 일이 있으셨나요?" "아니요." "그럼 가보세요." 라는데, 오갈 때 없는 분노가 엄마를 향했어. 엄마는 아직도 서운하지? 병원에 같이 갈 사람도 없다며.
내가 취업 면접을 볼 때, 존경하는 사람으로 엄마 이야기를 했어. 정말 멋져 보였거든. 전업주부였다 생계를 위해 밖으로 나갔지. 그 와중에 취미 생활도 하셨고, 무대에서 공연까지 하고. 나도 나중에 그렇게 나이 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우리가 다 떠나고, 엄마도 은퇴할 때, 희생했던 젊은 시절을 보상받듯 마음껏 즐기시길 바랐어. 엄마도 그랬겠지. 원인 모를 병으로 아프기 시작하더니, "곡기 끊고 죽고 싶다, 살아서 뭐 하냐"는 질문에 나도 괴로웠어. 내 미래가 저렇구나. 나는 왜 살고 있는 거지?라는 의문도 들었지.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언제든 죽음은 우리 곁에 있고, 그전까지는 잘 사는데 집중해 보자. 어차피 아픈 거, 집에만 누워서 텔레비전 보는 것도 힘들잖아. 밖에도 나가고, 사람들도 만나고, 제발 돈 좀 쓰고, 응?
우리 집 근처로 이사 오면 좋겠어. 한 시간 거리를 핑계 삼아 한 달에 한번 정도밖에 못 보잖아. 그래놓고 연락이 없다는 둥, 누구는 주말마다 홀어미 보러 온다는 둥 서운해하잖아. 아픈 모습 보여주고 싶지 않다고 하는데, 엄마 나이 드는 모습 옆에서 지켜보고 싶어. 가끔 둘이서 점심도 먹고, 문화센터도 한 번씩 가고. 옆에 있어야 같이 추억 하나로도 더 쌓지.
나 잘 살고 있고, 앞으로는 더 잘될 거야. 남편 덕 말고도, 나 스스로도 뽐낼 거니까, 우리 걱정은 안 해도 돼. 아! 그리고 용돈도 드릴게. 엄마돈 아까우면 쓰지 말고, 내 돈 써. 근데 그러려면 시간이 좀 필요해. 더 아프지 말고, 나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부르고. 집에 가만히 있으면 아픈 것만 신경 쓰이니까, 바쁘게 살아봐바. 그리고 상담도 꼭 받아봐. 정신병 아니라고 하는데, 그 뜻이 아니라고! 나도 작년에 받았잖아. 올해는 상담받으면서 마음의 짐도 덜고, 삶의 의미도 찾으셨으면 좋겠어요.
엄마, 오늘 우리 다 같이 맛있는 거 먹고, 떠들고, 아이들 재롱 구경하며, 잘 보내요. 언제나 사랑하는 거 알죠?! 사랑합니다. 진심으로.
편지를 쓰다 보니, 보내고 싶은 대상들이 여러 명 떠오르네요. 언제 제 마음을 전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제가 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어떠한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종종 가져 볼까 합니다. 그러다 보면 그 관계들을 소중히 여기고, 더 표현할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