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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초롱 Dec 28. 2023

기부 할 준비가 되었는가?

오늘 나를 위해 기부해 보자. 

나도 이제 누군가를 도울 준비가 되었는가? 자선단체에서 모금 활동을 하거나 인플루언서의 기부 행위를 볼 때마다 내 대답은 '아직 배고프다'였다. 나에게 충분한 자산과 여유가 생겨야 베풀 수 있는 줄 알았다. 돈이 바구니에 넘쳐흐르면, 자연스럽게 흘러가겠지. 아직은 통장에 돈이 들어오는 족족 빼서 쓰기 바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첫째의 병원비에 곧 다가올 둘째의 학업이나 부부의 노후를 위한 저축도 쉽지 않은데, 일면식 없는 이들을 돕는다는 게 사치처럼 느껴졌다.


도서관에서 '몰입'이라는 키워드로 책을 검색했다. 죠수아 베커가 쓴 '삶을 향한 완벽한 몰입'이 눈에 들어왔다. 어떻게 집중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이나 몰입했을 때의 즐거움을 알려주는 내용인 줄 알았는데 생각지 못한 내용들이 있었다. 넘쳐나는 물욕이나 상처 난 과거에서 벗어나 타인을 도우며 사는 의미 있는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미래의 가족들에게 쓸 자금을 미리 모으지 않고, 지금 당장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고아들을 위한 자선단체의 설립을 먼저 선택했다. 오늘의 자선이 미래에 필요한 돈을 끌어 쓴다고 여기지 않았다. 우리는 충분히 먹고, 편안히 자고,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남편이 침대 맡에 기대, 재벌 3세에 대한 다큐 영상을 공유했다. SK 창업주의 외손자인 '이승환' 대표의 하루를 볼 수 있었다. 가족 사업에서 나와 기부 서비스 플랫폼인 '돌고 도네이션'을 운영 중이었다. 기부금의 100%를 전달하기 위해 3%의 카드 수수료를 본인이 감당했기 때문에 사업이 잘 될수록 적자가 나는 구조였다. 그는 재벌인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며 눈을 반짝였다. 착한 사람은 아니지만 선한 일을 함으로써 착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대표는 행복해 보였다.


콧방귀를 뀌며 꼼짝도 안 했던 마음이 움직였다. 어쩌면 기부에 적절한 시기는 없는 게 아닐까. 남편은 대학교 때 들었던 어떤 강연 도중에 소액이지만 정기 후원을 시작했다. 지금 실행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는 강연자의 말 덕분이라고 했다. 그 당시 남편은 군대 휴가를 나와서 막노동을 할 정도로 경제난이 심각한 상태였다.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은 기부의 존재도 잊다 가계부를 작성할 때만 튀어나오는 금액이었다.  


나는 잘 살고 싶다. 특히 금전욕은 한 번도 채워지지 않은 목마름이다. 나보다 다른 사람을 우선으로 선택하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아직 하지도 않은 기부에 대해 저울질을 해본다. 먼 아프리카의 누군가 보다는 내 동네에 있는 분들을 도와주고 싶다. 확인 버튼 몇 번으로 끝나지 않고, 어디로, 어떻게 쓰였는지 알고 싶다. 삶에 변화를 일으키는 도움이 되고 싶은데, 나의 힘은 작디작았다. 거액을 투자한들, 한 사람의 삶이라도 바꿀 수 있는 것인가 의문도 들었다. 


실천도 없이 기대만 거창해진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돌고' 어플을 다운로드하였다. 이게 뭐라고, 지원할 분야를 들락거리며 사연을 읽어본다. 어디로 가야 좀 더 쓸모 있을까.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아동 양육에 관심이 갔다. 이미 매체를 타고 유명해진 '돌고'의 카드 수수료를 아껴 보려고 계좌 이체를 눌렀다. 함께 좋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돌고'에게도 금액을 추가했다.


은행을 등록하는 과정이 조금은 귀찮았지만 아주 쉽게 베풀 수 있었다. 기부 옆에 붙어 있는 봉사도 눌러본다. 돈도, 시간도, 누군가를 위해 쓴다고 해서 내가 누리는 혜택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난 이미 여유로운 삶을 누리고 있었는데도 계속 부족했던 이유는 더불어 사는 세상에 대한 결핍이 아니었을까. 오늘의 나눔으로 내 삶이 더 풍족해지는 길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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