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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초롱 Feb 15. 2024

화장대가 왜 필요했더라

다음에는 책상을 사야지

아이를 등원시키고 다시 부엌으로 향했다. 원형통에서 커피 캡슐을 무작위로 꺼내 머신에 끼워 넣었다. 추출이 다 되기도 전에 요리에 쓴다고 샀던 1리터 캐러멜 시럽을 대중없이 붓고, 시나몬 가루를 톡톡 뿌려줬다. 

 "헤이 구글, 책 읽기 좋은 잔잔한 클래식 틀어줘."

가사 하나 제대로 외우는 노래도 없지만, 혼자 남은 공기를 채워 넣기에 음악만 한 것이 없다. 안방에 있는 화장대에 앉아 커피잔을 내려놓고 노트북을 열었다. 매일 악착같이 글을 쏟아 내서 그런가, 운동과 약속을 핑계 삼아 쉬기 시작하자 의자에 엉덩이를 붙여놔도 선뜻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멍한 얼굴로 고개를 드는데, 동그란 거울에 먼지 쌓인 얼굴이 비친다. '여기에 거울이 있었나? 아! 화장하는 곳이지.'


결혼해서 독립할 때까지 손바닥만 한 탁상 거울을 두고 얼굴을 치장했다. 색조를 추가해 공을 드릴수록 가부키 마냥 하얗고 붉은 얼굴이 촌스럽게 동동 떠서 차라리 한 듯 안 한 듯 뒀다. 스킨이나 로션 말고는 스치듯 쓰기 때문에 립스틱이나 팔레트는 유통기한을 훨씬 넘기고도 다 써서 버리는 경우가 없었다. 이제 나이도 제법 먹었으니 제대로 화장을 해볼까 아이라이너나 마스카라를 마음먹고 사두었다 한두 번 쓰고는 굳어 버리기도 했다.


16평도 채 안 되는 방 세 개짜리 전셋집에 가구들을 들였다. 용인까지 가서 리퍼 제품을 할인하는 리바트에서 옷장과 식탁을 구입하고, 침대는 새것 같은 중고를 가져와 구겨 넣었다. 이만해도 꽉 차는 공간인데 마지막으로 화장대를 샀다. 때 타지 않은 새 걸로. 거울을 열면 공간이 따로 있었고, 책상 서랍처럼 곳곳에 수납을 할 수 있었다. 그만한 화장품이 없는데도 꾸미는데 쓰이는 제품들을 모아 숨겨뒀다. 


갓 태어난 아기와 입퇴원을 반복하다 잠깐 친정집에서 쉰다는 게 3년이 흘렀다. 차갑게 식은 전셋집을 정리했다. 이미 살고 있는 집과 합치는 거라 대부분의 짐을 처분했는데, 침대와 화장대는 가져왔다. 친정어머니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아 개봉 연도를 알 수 없는 화장품들이 즐비했다. 귀걸이나 머리핀, 손톱깎기, 미용 가위, 더 이상 차지 않는 손목시계 등을 합치니 빈 공간 없이 알차게 다 들어갔다. 화장대 앞에서는 얼굴을 꾸민다기보다는 앉아서 머리 말리는데 주로 이용했다.  


2년 전, 새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이미 친정집의 물건인 것처럼 찰떡처럼 붙은 살림살이라 그대로 두고 자잘한 물건들만 오고 가며 날랐다. 나머지 필요한 것들은 신혼에도 제대로 못해본 가구 쇼핑을 했다. 매장에서 고른 깔맞춤 침대, 옷장, 화장대를 구입하기 직전에 3D 시뮬레이션으로 배치를 해봤다. 이런, 가구들이 다 들어가지를 않는다. 어느 것 하나 포기 할 수 없는 물건들이라 고민 끝에 옷장을 지웠다. 안방 가운데에 침대를 놓고, 남은 옆면에 서랍장이 딸린 화장대가 길게 차지했다. (나중에 거울이 딸린 슬라이딩 옷장을 작은방에 넣었다.)


의심의 여지없이 나를 따라다녔던 필수 가구 중에 하나였다. 드라이기가 화장실로 들어갔더니 화장대는 어느새 장식품이 되었다. 그나마 책상 대신으로 앉지 않았다면 스툴은 화장대 밑으로 들어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열어둔 노트북을 제쳐두고 거울에 쌓인 먼지를 닦아냈다. 한 번쯤은 정복하고 싶었던 화장 기술이었지만 결국 내 것이 되지 못했다. 언젠가 또 이사를 가게 된다면, 7년 넘게 이유 없이 집착했던 화장대 대신 책상을 마련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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