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수배 : 찾습니다.

2월 1주, 수요일

by 테라

복도에서 비장한 발걸음 소리가 들립니다.


고사리 같은 손에 꼬깃꼬깃한 '1급 기밀문서', 아니 지금 막 완성된 '자화상' 그림 한 장을 꼭 쥔 채 말이지요.

주인공은 5살 반, 시완이였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제가 방을 잠시 비운 사이 일어났습니다.

영아반 친구들의 놀이가 궁금해 한창 친구들과 노래를 이어가고 있을 때, 그 틈을 타 시완이는 자기가 완성한 그림을 자랑하고자 '원장님 방'에 들렸고 자리에 없는 것을 알게 된 후 '선생님을 찾아내겠다'는 결심을 한 듯합니다.


시완이의 '선생님 검거 작전'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교실마다 문을 빼꼼히 열고 들어가 시완이의 첫마디는 비장합니다


"원장 선생님 어디 계세요? 보신 분 없나요?"


각자의 교실에서 즐거운 놀이가 한창이니 그 답에 명확한 답을 해 줄 이가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각 반 교실의 창문 너머로 선생님의 흔적을 찾아 헤매던 시완이는 마치 깃발처럼 그림을 높이 치켜든 채, 원 구석을 훑고 지나갑니다.


시완이의 손에 든 그림은 여러 곳을 경유하느라 종이 끝부분은 꼬깃해졌고 손에서 베인 땀이 살짝 종이에 번져 있기도 했지만, 시완이의 눈빛만큼은 '반드시 선생님을 찾고야 말겠다'는 현상 수배범을 쫓는 형사의 그것보다 날카롭습니다.


"선생님, 여깄었네요. 찾았다!!"


제일 어린 동생반에서 노래와 율동에 한창인 선생님을 발견하고는 헐떡이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이야기합니다.


"선생님 찾느라고 모든 교실을 다 갔다 왔어요"


온 교실을 다 헤매며 찾아다닌 시완이의 그림에는

이제 이만큼 표현할 수 있는 성장과, 자신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냈다는 자신감이 가득합니다.

이런 아이의 마음을 알아채면 포옹과 찬사를 아낄 수 없습니다.


"우와~ 시완아, 정말 멋지게 그렸네. 눈도 아주 힘 있게 그렸고.. 우리 이 그림 복도에 전시하자!"


시완이의 얼굴에 세상을 다 가진 듯한 승자의 미소가 번집니다.

칭찬 한마디를 '검거'하기 위해 온 교실을 찾아 헤맨 시완이의 '추격전'은 그렇게 훈훈하게 종결되었습니다.


현상수배, 선생님을 찾습니다.

검거 완료, 사건 종료입니다. :-)





3~7세 시기는 아이가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능력이 빠르게 성장하는 시기인데, 자화상을 그려낸다는 것은 단순한 그림 활동을 넘어 자기 정체감을 형성하고 ‘나는 누구인가’를 탐색하는 과정입니다.

그림 속에서 눈을 힘 있게 그려 넣고 자신을 표현한 것은 자기 존재를 강조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그림을 통해 자기 세계를 드러내며, 그 과정에서 자신감과 성취감을 경험합니다.


또한 시완이가 교실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선생님 어디 계세요?”라고 묻는 모습은 사회적 탐색과 관계 형성의 발달을 잘 보여줍니다. 3~7세 유아는 또래와 교사와의 관계 속에서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대화를 시도하며, 언어를 목적 지향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단순히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얻기 위해’ 언어를 활용하는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죠. 시완이는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고 싶다는 목표를 위해 교실마다 탐색하며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졌고, 이는 사회적 의사소통 능력이 발달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숨이 차도 포기하지 않고 모든 교실을 돌며 선생님을 찾아내는 행동은 자기 조절과 끈기의 발달을 보여줍니다. 유아는 아직 충동을 조절하는 능력이 미숙하지만, 목표가 분명할 때는 놀라운 집중력과 지속성을 발휘합니다. 시완이가 “반드시 선생님을 찾아야겠다”는 마음으로 끝까지 탐색을 이어간 것은 자기 조절 능력이 점차 발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런 경험은 아이가 스스로의 행동을 계획하고 실행하며 성취감을 느끼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됩니다.


마침내 선생님을 발견하고 그림을 보여주었을 때, 교사가 “정말 멋지게 그렸네, 복도에 전시하자”라고 따뜻하게 반응한 순간은 아이에게 큰 의미를 갖습니다. 자신의 표현이 존중받고 사회 속에서 의미를 가진다는 경험은 유아기에 매우 중요한 ‘존재감 확인’과 ‘성취 경험’으로 이어집니다. 이는 아이가 앞으로 더 자신 있게 자기표현을 시도하고, 사회적 탐색을 즐길 수 있는 힘을 길러줍니다.


이 작은 추격전은 단순히 그림을 자랑하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 자아 인식·사회적 관계·목표 지향적 행동이 어우러진 발달의 한 단면이자, 교사의 따뜻한 반응이 아이의 성장에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교육적 순간입니다. 유아 발달에서 중요한 것은 아이가 표현한 것을 존중하고, 그 과정에서 느낀 성취와 자신감을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시완이의 경험은 아이가 자기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사회 속에서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힘을 키워가는 과정의 아름다운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함께 생각해 볼까요?


ㅣ 아이가 유치원 전체를 뒤져 선생님을 찾아낸 이유는

단순히 그림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닙니다.

자신의 성장을 가장 기쁘게 지켜봐 줄

'한 사람의 확신'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나는 어떤 관객인가요?

1열에서 가장 크게 박수 쳐주는 열혈 팬인가요,

아니면 스마트폰 너머로 건성으로 대답하는 관객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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