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이 얼마 남지 않은 오늘.
다음 주 설연휴가 지나고 나면 이제 함께 할 수 있는 날은 불과 6일 정도.
손가락으로 함께 꼽아보던 아이들의 눈빛이 흔들립니다.
얼마 전까지 '초등학교'간다며 신나게 깔깔 웃어대던 녀석들인데 졸업을 준비하며 그리는 그림과 글들에서 이제는 '이별'을 실감하는 아이들이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여느 때의 사랑을 고백하던 편지들은 '보고 싶을 거예요'라는 글로 도배가 되고
그림 속의 선생님은 날을 더할수록 더욱 이쁨과 하트의 수도 더해갑니다.
오늘은 초등학교에 가면 어떻게 지내게 될까를 이야기하며 그 바람을 그림으로 그려보기로 했지요.
넓은 운동장, 새로운 짝꿍, 선생님, 급식실.. 이런 모습들을 한창 이야기 나누었는데
아이들의 그림 속 풍경은 조금 다릅니다.
그때 담이가 손을 번쩍 들더니 거창한 제안하나를 합니다.
선생님, 제가 진짜 좋은 생각이 났는데요. '초등학교'하나를 만들어 주세요.
그럼 우리 헤어지지 않아도 되고 계속 재미있게 지낼 수 있잖아요.
담이의 이야기에 너도나도 아이들이 거듭니다.
"맞아요, 우리 원 옆에 건물을 하나 지으면 어때요?"
"그냥, 빈교실에 초등학교 1학년반 만들면 되잖아요."
아이들의 제안은 이루어질 수 없는 '희망고문'같기도 하지만 눈물겹습니다.
제발 우리를 떠나보내지 말아 달라는 간절한 청원이었습니다.
말을 잇지 못하는 제게,
다시금 담이가 제안을 합니다.
그냥 우리 간판만 '초등학교'로 바꿔 달아요. 우리만 알게요.
물리적인 건물보다, 훌륭한 시설보다.
그저 '나를 알아주는 선생님'이 있는 곳. 함께해서 즐거운
'내 친구들'이 있는 곳이 아이들에게는 '
진짜 학교'였나 봅니다.
남은 시간 6일. 비록 아이들의 바람대로 초등학교를 뚝딱 지어줄 수는 없지만,
이 녀석들이 세상 어디를 가든 무너지지 않을 단단한 마음의 기초만큼은 남은 시간 동안 꽉꽉 채워 보내고 싶습니다.
언제든, 이곳이 그리우면 놀러 오렴.
두 팔 벌려 반가이 너희들을 안아줄 테니.
아이들이 졸업을 앞두고 보여주는 모습은 3–7세 발달 특성과 깊이 맞닿아 있습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여전히 중요한 관계와의 분리에 불안을 느끼며, 선생님과 친구들과 계속 함께하고 싶다는 제안은 애착과 안정감을 유지하려는 본능적인 표현입니다.
‘사랑해요’에서 ‘보고 싶을 거예요’로 바뀐 편지는 현재의 즐거움뿐 아니라 미래의 그리움을 상상할 수 있게 된 정서 발달의 성장을 보여주고, 친구들과 함께 초등학교를 새로 만들자는 발상은 또래 집단 속에서 소속감을 유지하려는 사회성 발달의 증거입니다.
또한 “간판만 바꿔 달자”는 제안은 현실적 제약을 인지하면서도 창의적으로 해결책을 찾는 인지 발달의 모습이며, 남은 시간을 손가락으로 세는 행동은 시간의 흐름을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자라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런 발달적 맥락에서 교사가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안정감과 기억입니다. 아이들이 떠나도 돌아올 수 있는 곳이 있다는 메시지는 정서적 안전망을 제공하고, 남은 날들을 특별한 추억으로 채워주는 활동은 새로운 환경에서도 자신감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초등학교 생활을 긍정적으로 상상하도록 돕는 것은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기대와 호기심으로 바꾸어 주며,
결국 아이들에게 진짜 학교란 건물이나 간판이 아니라 나를 알아주는 선생님과 함께하는 친구들이 있는 곳이라는 깨달음을 심어줍니다. 남은 시간 동안 아이들이 “나는 사랑받는 존재”라는 확신을 품고 떠날 수 있도록 작은 순간 하나하나가 단단한 마음의 기초가 되어줄 것입니다.
ㅣ 새로운 시작 앞에서 뒷걸음질 치고 싶은 마음은 어른이나
아이나 매한가지인가 봅니다.
두려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등을 떠미는 '용기'일까요,
아니면 힘들면 언제든 다시 와도 된다는
'믿는 구석'일까요?
ㅣ 우리는 아이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려 애쓰지만,
정작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언제든 돌아와 쉴 수 있는
좁지만 확실한 '마음의 안식처'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