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입니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지금쯤, 당신의 얼굴엔 어떤 표정이 남아 있나요?
혹시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한 눈물을 삼키며,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웃는 연습을 하고 있진 않으신지요.
"다 큰 어른이 언제까지 청승맞게 울 수는 없지."
"시간이 약 이랬어. 빨리 훌훌 털고 일어나야지, 나만 왜 이러지?"
내 안의 슬픔은 턱 끝까지 차올랐는데,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완벽해 보이고, 괜찮아 보이려 애씁니다. 그렇게 억지로 웃다 슬그머니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면, 왠지 모르게 초라하고 텅 비어버린 기분.
분명 낮에는 잘 버텼는데, 혼자 남겨지자 갑자기 밀려오는 이 무너짐을 어쩌면 좋을까요.
상담실에는 슬픔을 억누르다 우울증이 깊어져 찾아오는 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편의상 이분들의 마음을 모아 'U님의 사연'이라고 불러볼까요?
U님은 힘없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합니다.
다들 상처를 훌훌 털고 잘 살아가는 것 같아요.
제 친구들은 힘든 일이 있어도 금방 잊고 웃는데,
저는 아직도 그 시간 속에 갇혀서...
저만 제자리걸음인 것 같아서 불안해요.
U님은 자신의 가장 자연스러운 감정인 '슬픔'을 빨리 치워야 할 '분비물'이나 극복해야 할 '질병'으로 취급하고 있었습니다. 슬픔은 마음이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보내는 가장 솔직한 '치유의 신호'입니다. 그 신호에는 나만 아는 아픔이나 상실의 깊이가 담겨있죠. 그런데 우리는 그 긴 치유의 시간이 마치 실패인 것처럼 착각하며, 내 감정의 속도를 남과 비교해 스스로를 깎아내립니다.
안 슬픈 척, 괜찮은 척 웃고 나면 제가 너무 위선자 같아서 잠이 안 와요.
우리는 몸에 난 작은 생채기 하나에도 정성껏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이면서,
왜 마음이 깊게 베인 상처는 덮어둔 채 당장 아무렇지 않게 뛰라고만 하는 걸까요?
심리학적으로 볼 때, 이것은 '정서 억압(Emotional Suppression)'의 함정입니다.
아픈 감정을 억누른다고 해서 상처가 낫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내면 깊은 곳에서 우울과 무기력이라는 더 큰 그림자로 자라나기 때문에
내 마음만 가난해져 갈 뿐입니다.
억눌린 슬픔 때문에 일요일 밤을 망치고 있는 당신께, 저는 이런 처방을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의 슬픔은 '불청객'이 아닙니다. 남의 속도에 맞추려다 당신의 마음을 잃어버리지 마세요."
누군가 며칠 만에 훌훌 털고 일어났다면, 그건 그 사람의 상처가 딱 그만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왜 아직도 아프지?" 자책하지 마세요.
그냥 "저 사람은 저만큼 아팠고, 나는 더 깊이 아프구나. 그럼 난 더 오래 울어야겠다." 하고
내 감정이 흐르는 대로 두면 그만입니다.
당신 감정의 주관자는 타인이 아니라 바로 당신이니까요.
오늘 밤, 억지로 눈물을 참느라 굳어버린 당신의 마음을 토닥여줄 노래는
스웨덴세탁소의 <두 손, 너에게> (Feat. 최백호)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WL7XHjjdWg&list=RDaWL7XHjjdWg&start_radio=1
사랑했었던 것들이
자꾸 사라지는 일들은
그 언젠가에 무뎌지기도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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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말아라
너의 세상은 아주 강하게 널 감싸 안고 있단다.
나는 안단다 그대로인 것 같아도
아주 조금씩 너 나아가고 있단다.
이 노래는 슬픔 속에 갇혀 "나만 그대로 멈춰있는 것 같아 뭘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묻는 우리에게,
아주 깊고 따뜻한 어른의 목소리로 다정하게 허락해 줍니다.
"걱정 말아라. 그대로 멈춰있는 것 같아도, 너는 아주 조금씩 나아가고 있단다"라고요.
그리고 아주 중요한 해답을 줍니다.
당신의 세상이 생각보다 강하게 당신을 감싸 안고 있으니,
남들처럼 빨리 털고 일어나려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이죠.
여기서 '제자리에 머무른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지금 당신을 짓누르는 상실감들, 타인의 시선 때문에 억누르고 외면했던 슬픔에게 기꺼이 곁을 내어주는 일입니다. 그 아픈 감정들을 피하지 않고 충분히 내 안에 머물게 허락하고 나면, 비로소 들릴 겁니다.
한결 편안해진 내 숨소리가, 그리고 다시 걸음을 뗄 수 있는 작은 심장 소리가요.
안 아파해도 되는 어른은 없습니다.
무조건 빨리 극복하는 게 정답도 아닙니다. 치유는 아픔을 덮어두고 뛰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상처가 아물 때까지 내 마음을 충분히 보살펴주는 긴 여행이니까요.
오늘 밤은 억지로 웃는 표정을 지우고, 오직 당신만의 속도로 슬픔이 머물도록 허락하며 잠드시길 바랍니다. 당신은 나약해서 멈춰있는 게 아니라, 당신만의 아픔을 아주 잘 통과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비가 그치길 기다리듯,
슬픔이 오면 그 감정이
마음껏 머물다 가도록 내버려 두세요.
충분히 젖어야,
다시 뽀송하게 마를 수 있습니다.
[두 손, 너에게] 이 곡은 2015년 9월에 발매되었으니
벌써 10여 년이 훌쩍 지난 곡입니다.
시간이 지나도 나지막한 목소리로 위로를 건네주는 이 노래를 개인적으로도 참으로 좋아합니다.
'최백호'라는 가수의 말하듯 읊조리는 목소리는 덤덤하게 그러나 따스하게 묵묵히 알아봐 주는 느낌이 들어 참 좋네요.
마음이 지칠 때,
숨 고르기가 필요할 때 가까이 두는 노래입니다.
오랜 시간 속에서도 한결같은 곡.
그래서 이 노래를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상담사의 플레이리스트]는 보통 1-2주 전에 작성하고 문득문득 느낌이 달라질 때마다 글이 수정되곤 합니다.
곡을 선정하고는 반복적으로 들으며 사연에 해당되는 감정에 빠져보고도 하지요.
이 노래는 유난히 지난 1주일 동안 곁에서 줄곧 함께 해 준 곡이네요.
상담사의 플레이스트는,
제목은 무겁고 어둡기도 하지만
결국엔 그 긴 터널을 지나, 당신의 마음에 다시 따뜻한 빛이 들기를 응원하는 편지입니다.
두 번째 맞이하는 새해이자, 마지막 새해를
포근하게 그리고 단단히 지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