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입니다.
퇴근길 만원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오는 길,
유난히 발걸음이 무겁고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날이 있습니다.
누군가 당신에게 무례한 말을 던진 것도 아니고, 상사에게 꾸지람을 들은 것도 아닙니다.
그저 퇴근 직전, 가장 친한 친구에게서 온 메신저 알림 하나 때문입니다.
"나 이번에 꿈에 그리던 그 부서로 발령 났어! 연봉도 꽤 올랐고. 주말에 내가 밥 살게!"
분명 기뻐해야 할 일입니다. 누구보다 그 친구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잘 아니까요.
"정말 축하해! 고생 많았어!"
느낌표를 가득 담아 답장을 보냈지만, 화면을 덮고 나자 입맛이 뚝 떨어집니다.
축하하는 마음 한편으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씁쓸함, 왠지 모를 조급함,
그리고 배가 꼬이도록 억울한 이 마음.
우리는 차마 입 밖으로 꺼내기 부끄러운 이 감정을 '질투'라고 부릅니다.
상담실에서 만나는 많은 내담자들은 이 질투라는 감정을 고백할 때 유독 깊은 수치심을 느낍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유명인이나 SNS 속 모르는 부자의 성공에는 쉽게 박수를 치면서도,
나와 출발선이 같다고 생각했던 가장 가까운 친구, 동기, 형제의 성공 앞에서는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가는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이죠.
오늘도 U님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젖은 목소리로 털어놓았습니다.
저 정말 못된 사람인가 봐요.
어려울 때 함께 울고 웃던
가장 친한 친구가 잘 풀렸다는데,
진심으로 축하해 주기가 힘들어요.
겉으론 웃으면서 박수를 쳤지만,
속으로는 그 친구가 얄밉고
제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져서
견딜 수가 없어요.
이렇게 찌질하게 질투나 하는 제가
너무 징그럽고 싫어요.
시중의 많은 심리학 책이나 따뜻한 위로들은 이런 우리에게 아주 바른 처방을 내놓습니다.
"타인과 비교하지 마세요.
질투는 영혼을 갉아먹는 독이니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세요. 어제의 당신과만 비교하며 당신의 길을 가세요."
하지만 저는 이런 주류 심리학의 모범 답안이 우리의 숨통을 더 조인다고 생각합니다.
질투심으로 이미 괴로운데, 그런 감정을 느끼는 나를 '성숙하지 못한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어버리니까요.
질투심을 억누르고 어떻게든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쿨한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그 강박이
우리를 더 깊은 자기혐오의 늪으로 빠뜨립니다.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칼 융(Carl Jung)은 인간의 내면에 억눌린 무의식적 요소를 '그림자(Shadow)'라고 불렀습니다. 그림자는 내가 외면하고 싶거나, 미처 꽃 피우지 못한 나의 잠재력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가장 가까운 사람을 유독 강렬하게 질투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그 사람의 빛나는 성취 속에, 내가 애써 억눌러왔거나 포기했던 내 안의 '그림자(나의 가능성)'가 거울처럼 반사되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친구가 당당하게 승진하는 모습이 배 아플 때, 당신이 진짜 질투하는 건 그 친구의 월급봉투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매번 눈치만 보며 내 주장을 펼치지 못했던 '나의 위축된 태도'와, 반대로 당차게 기회를 쟁취한 친구의 '용기'가 대비되어 뼈아프게 다가오는 것이죠.
친구가 멋진 재능을 발휘하며 칭찬받을 때 질투가 난다면, 그건 한때 가슴 품었지만 현실에 부딪혀 접어두었던 당신의 '이루지 못한 꿈'이 친구를 통해 선명하게 떠올랐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니 가장 가까운 이를 질투하며 괴로운 밤이라면, 나를 찌질하다고 탓하며 억지로 웃는 연습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신, 그 부러움과 시기심의 이면을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저 친구의 모습 중, 내 안에도 있었지만 내가 미처 꽃 피우지 못한 씨앗은 무엇일까?"
질투는 내가 가야 할 방향과, 내가 외면했던 내 안의 불꽃을 정확히 가리키는 나침반입니다.
그 감정을 억누르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아, 나도 저렇게 내 목소리를 내고 싶었구나"
"나도 저런 성취감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구나" 하고 알아차려 주는 것.
그것이 내 안의 그림자와 화해하고 진짜 내 삶의 주인이 되는 첫걸음입니다.
오늘 밤, 가까운 이의 빛나는 뒷모습을 보며 초라해진 당신에게 들려드리고 싶은 노래는
박효신의 <숨>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gwKhI8FUZY&list=RDKgwKhI8FUZY&start_radio=1
오늘 하루 쉴 숨이
오늘 하루 쉴 곳이
오늘만큼 이렇게 또 한번 살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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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 너머 어딘가 봄이
힘없이 멈춰있던
세상에 비가 내리고
다시 자라난 오늘
그 하루를 살아
이 노래는 억지로 쿨한 척, 괜찮은 척 숨을 참으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한숨 같은 위로를 건넵니다.
남들의 속도와 성취에 숨 막히는 날, 억지로 남을 축하하려 애쓰기보다 그저 내 거친 숨을 고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다독여줍니다.
이 노래에서 말하는 '숨'은 단순히 호흡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하루 속에서 내가 까맣게 잊고 지냈던 '나의 작은 꿈'. 그리고 내 안에서 반짝이고 싶었지만 외면당했던 '나만의 빛'입니다.
가장 친한 사람을 질투하는 건 당신이 인성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당신 안에도 여전히 피어나고 싶은 열망과 생명력이 숨 쉬고 있다는 아주 건강한 증거일 뿐입니다.
질투는 결국 '나도 내 꿈을 위해 숨 쉬고 싶다'는 당신 내면의 아주 간절하고 건강한 생명력의 외침입니다.
오늘 밤은 억지로 착한 친구, 쿨한 동료가 되려던 무거운 가면을 벗어던지세요. 속으로 마음껏 배 아파하고, 마음껏 찌질해지며, 온전히 당신의 결핍을 안아주는 따뜻하고도 솔직한 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마음 문장
질투는
내 안에 웅크려 있던
또 다른 가능성이
보내는 구조 신호입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을
질투하는 당신은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다만,
당신의 삶을
더 눈부시게 피워내고 싶은
간절한 사람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