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도 물러가고
창밖으로 봄의 전령사들이 여기저기서 꽃을 피워 드디어 '봄'이 왔음을 알릴 때
따르릉 전화 한 통이 옵니다.
선생님, 제가 오늘부터 출산으로 병원에 들어가요.
산후조리까지 하면 3주 동안 저 없이, 우리 유찬이가 아빠랑만 지내게 되는데
엄마랑 처음 이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는 거라 어떨지 모르겠어요.
원에서도 잘 지낼 수 있도록 관심 부탁드려요.
유찬이에게 동생이 생긴다는 소식을 들은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열 달이라는 시간이 흘러 드디어 동생과 마주한 시간이 다가온 것입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건강한 아이를 만날 설렘과 함께, 당분간 엄마 품을 떠나 있을 첫째에 대한 애틋함과 미안함이 짙게 배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오후,
동생이 태어났다는 기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다음날이 되어
아침 등원시간,
유찬이 동생의 탄생 소식은 선생님들 모두에게 전해졌고
진짜 형님이 된 유찬이와 인사를 나누는 선생님들 모두는 축하의 인사를 건넵니다.
"유찬아, 동생 생겨서 좋겠다. 이제 진짜 형님이 됐네.
동생 만났어? 귀여워? 좋겠다, 좋겠어"
유찬이에게는 실감이 나지 않는 걸까요?
만나는 선생님들마다 건네는 이 축하 인사에 여느 때 같으면 방긋 웃으며 화답했을 유찬이 인데
오늘은 표정의 변화 없이 별다른 말이 없습니다.
어른들에게는 너무나 기쁘고 당연한 축하의 인사지만,
이제 겨우 세상을 산 지 몇 년 되지 않은 작은 친구에게 그 말은 어떤 무게로 다가왔을까요?
자신을 향하던 온 우주가 하루아침에 작고 낯선 아기에게로 옮겨갔습니다.
게다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엄마마저 동생에게 그 옆자리를 내어주고
오랜 시간을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사실이
아이에게는 어른이 짐작하기 힘든 상실감과 불안함이 크고 깊을 것입니다.
나는 아직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 아이인데,
갑자기 씩씩한 형님처럼 굴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을 받게 된 셈이지요.
멍하니 서있는 유찬이에게 다가가 눈높이를 맞추려 무릎을 굽히고
유찬이의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며 귓속말을 건넵니다.
선생님은 우리 유찬이가 주말 내내 너무 보고 싶었어.
누가 뭐래도 선생님에게는 우리 유찬이가 최고야. 선생님하고 한번 안아볼까?
그제야 아이의 흔들리던 눈동자가 멈추고, 파르르 떨리던 입술이 무너지며 제 품으로 와락 안겨듭니다.
엉엉 소리 내어 울지는 않았지만, 품에 안긴 작은 어깨의 긴장이 풀어지는 것을 느끼며 아이의 등을 오래도록 토닥여 주었습니다.
네가 밀려난 것이 아니라고,
너는 여전히 변함없이 사랑받고 있는 소중한 존재라고 온기를 통해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동생의 탄생이라는 거대한 변화 앞에서 아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은,
형님이 된 것에 대한 축하가 아니라 '너는 여전히 나의 첫 번째'라는 든든한 위로가 아니였을까요?
발달 심리학에서는
첫째 아이가 동생을 맞이할 때 느끼는 스트레스를,
배우자가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연인을 집으로 데려와 함께 살자고 하는 것과 비슷한 충격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아이가 동생을 질투하거나 갑자기 아기 짓을 하며 퇴행하는 모습을 보일 때,
"너 다 컸는데 왜 이래"하고 다그치지 말아 주세요.
그것은 나쁜 마음이 아니라, 엄마 아빠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아주 자연스럽고 애처로운 몸짓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동생은 잠깐 다른 양육자에게 맡겨두고,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온전히 아이만을 위한 시간을 가져주세요.
너는 동생의 형님이 아니라, 엄마 아빠의 가장 소중한 첫 번째 보물이라고 말이지요.
오늘 하루, 갑자기 훌쩍 커버려야 했던 우리 첫째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온 우주를 다 담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해주는 건 어떨까요.
"엄마 아빠는 네가 제일 좋아, 네가 최고야!"라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