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주, 월요일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보면 또다른 세상을 마주하게 됩니다.
특히나 이제 막 난화기를 지나는 아이들은 그림의 형태가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동글뱅이 하나가 엄마가 되고, 찍 그은 직선이 아빠가 되고, 점 하나가 선생님이 되는 세계.
그림의 해석자가 꼭 필요하기도 하고, 그 해석자는 오직 그림을 그린 아이 자신입니다.
오늘은 아이들과 Art 시간에 우리 가족을 그려보기로 하였습니다.
보통 5월의 활동 주제로 선정되는 '가족'은 이미 지난번에도 그림으로 표현해 본 경험이 있지만,
6개월여만에 우리 친구들의 그림표현들은 제법 더 굵직해지고 다양해졌습니다.
오늘 우리 가족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다음주 엄마, 아빠와 함께하는 참여활동을 위해 방문해 주실 부모님을 위한 깜짝 선물이기도 했습니다.
그림이 완성 된 후,
아이들과 모두 복도로 나가 각자가 그린 그림의 위치를 정해 전시를 마치니 모두들 흐믓하게 자신의 그림을 바라보며 이야기 꽃을 피웁니다. 모두들, 부모님이 오셨을 때 자신의 그림을 바라볼 그 모습들을 상상하는 듯 합니다.
교실로 돌아가자 청하는 그 때, 아이 한명이 이야기 합니다.
"집에 가져 갈래요"
"응?"
"이거 집에 가져 가고 싶어요"
이미 그림그리기 활동 전, 그림을 그리는 이유를 이야기 나누고 전시도 다 마친 후인지라 아이에게 다시 설명을 합니다.
"지안아, 우리 이 그림은 다음주 엄마, 아빠가 오셨을 때 보여드리려고 선물로 준비한 건데, 그때까지 기다릴 수 있을까?"
"싫어요, 집에 가져 갈래.."
자신이 표현한 가족의 모습이 맘에 쏘옥 들어서였을까요? 그래서 이 그림을 빨리 우리 가족에게 보여주고
싶어서였을까요? 아이의 간절하고 단호함이 담긴 눈빛을 바라보니 이를 거절하기는 어렵습니다.
활동이 모두 끝나고 귀가하는 길,
아이는 자기가 그린 그림을 소중히 안고 돌아갑니다. 아이가 선보일 그 그림에 가족들이 보일 환한 미소를 기대하는지 여느 날보다 더욱 총총총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이 날, 아이의 전시 자리는 같은 그림으로 걸어두었습니다.
아이의 그림을 칼라복사기로 복사를 해서 원본은 가정으로, 복사본으로 전시 자리를 대신하였지요.
깜짝 선물을 하지는 못했지만, 아이의 가족은 아이의 따스한 마음을 미리 선물 받은 기쁨이 더 하는 오늘이였을 것입니다.
유아기는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로, 아이들은 자신이 세상에 어떤 존재인지 탐색하며 경험합니다.
특히 이 시기는 자아존중감의 기초가 형성되는시기로, 자신이 표현한 것을 타인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자존감 발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아이의 그림은 단순한 미술 활동의 결과물이 아닙니다. 아이에게 있어 가장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자기표현의 수단입니다. 상징적 사고의 발달로 선 하나, 점 하나에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세계를 구성합니다.
그림 속에는 아이가 바라본 세상,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표현해낸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담겨 있습니다.
“집에 가져갈래요”라는 말은 그 그림을 통해 표현한
자신의 마음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자, 그 마음이 존중받기를 바라는 간절한 표현이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교육의 흐름과 계획을 지키는 데 집중하느라 아이의 감정과 표현을 놓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이의 자존감은 바로 그런 작은 순간의 존중에서 시작됩니다.
지안이의 단호한 눈빛을 마주한 순간, 아이의 마음을 우선하는 선택과 복사본을 전시하고 원본을 가정으로 보낸 그 결정은, 아이의 감정을 존중한 따뜻한 실천이었습니다.
아이는 자신이 만든 것을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가족에게 보여주고 싶어 했습니다. 그 마음을 받아들인 경험은 아이에게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내면의 믿음을 심어줍니다.
자신의 표현이 가치 있다고 느끼는 순간, 아이는 자존감을 키워갑니다.
존중은 거창한 말이나 특별한 행동이 아닙니다.
아이의 말 한마디, 눈빛 하나에 담긴 의미를 천천히 들여다보고, 그 마음을 기다려주는 일.
그 기다림 속에서 아이는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는 것을 배우고, 그 배움은 평생을 지탱할 자존감의 뿌리가 됩니다.
ㅣ 활동의 흐름을 지키는 것과 아이의 감정을 존중하는 것
사이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하고 있나요?
ㅣ 아이가 표현한 상징(동그라미, 선, 점 등)을 그 자체로
의미있게 받아들이고 있나요?
아니면 구체화 하기 위해 선생님의 손길이 더해지거나,
생각들을 더하고 있지는 않나요?
*난화기 : 난화기는 로웬펠드가 제시한 아동미술 발달 단계의 첫 단계로 약 2~4세에 의미없는 낙서를
반복하며 팔 전체를 이용한 운동 중심의 표현을 보이는 시기입니다. (네이버 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