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주, 목요일
우리들의 언어약속 중 하나는
"교실에서는~" "뛰지 않아요"입니다.
책상이나 교구재들이 있는 공간이다 보니 잡기 놀이등,
뛰는 활동을 하게 되면 안전에 걱정이 있을 수 있어
신나게 뛰어노는 것은 신체활동실인 gym교실에서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우리들의 이야기를 언제나 한결같이
따를 리 없습니다. :-)
요즘 작은 친구들은 자동차 놀이에 심취하고 있습니다.
미니카부터 커다란 트럭, 포클레인까지 우리 교실로 총집결되었지요. 마치 자동차 전시장 같습니다.
아이들의 자동차 놀이는 그 속도감이 더하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레이싱 경주가 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찰나, 책상에 한 아이가 부딪혔고 허벅지를 움켜쥐고는 눈시울이 붉어지며 이제 막 울음이 터지기
직전입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조심 좀 하지, 선생님이 교실에서 뛰지 말자고 했는데.."라는 말을 하려는 찰나,
함께 놀이를 하던 친구 한 명이
"떼찌 떼찌, 우혁이를 다치게 했어. 떼찌."
하고 조그마한 손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우혁이의 다침을 책상에게 분풀이를 합니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친구의 아픔을 함께하고 싶어 위로하는 마음이 사랑스러워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고
다친 아이에게 다가가 어디가 아픈지,
큰 상처가 난 건 아닌지 물으며 살펴봅니다.
다행히 큰 상처 없이 간단한 타박상으로 오늘의 레이싱은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마무리하기엔 아이들과 나눌 이야기가 있습니다.
첫째, 우리가 함께 하는 '언어약속'은 즐거움과 안전을 위한 약속이라는 거.
아이들의 놀이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안전하게
놀기 위한 약속임을, 자동차 경주같이 많이 움직여야 하는 공간이 필요할 때는 우리 교실에서도 넓은 공간을 먼저 만들고 놀이를 하자는 이야기를 나눕니다.
둘째, 친구가 다쳤을 때 그 아픔에 공감하고 책상에게 대신 화내주는 그 감정에 충분히 동감과 고마운 마음을 표현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친구가 다친 이유는 가만히 있던 책상의 잘못이 아니라, 놀이활동에 집중하느라 보지 못하고 부딪힌 점을 이야기 나눕니다. 물활론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친구들에게 있어 책상이 우혁이를 다치게 한 존재는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이해해 가는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이지요.
** 물활론적 사고는 무생물에게 생명과 감정을 부여하는
사고로, 유아기에 나타나며 성장하면서
논리적 사고가 발달함에 따라 점차 감소합니다.
3세에는 모든 사물이 살아있다고 생각하며,
4~6세는 움직이는 것이,
6~8세는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
8세 이후가 되어야 생명이 있는 것은 식물과 동물이라고
인식합니다.
작은 친구들과 함께하는 하루는 늘 예기치 못한 순간들로 가득합니다.
놀이에 몰입한 아이들은 규칙을 잊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작은 사고가 생기기도 하지만,
그 순간을 단순한 지적의 기회로 삼기보다 아이의 감정과 상황을 이해하는 대화의 기회로 삼는 것은
교육적으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친구의 아픔에 공감하며 책상에게 “떼찌 떼찌”라고 말하는 행동은 물활론적 사고에서 비롯된 유아의 자연스러운 감정 표현입니다.
유아기는 상상과 현실의 경계가 흐릿한 시기입니다. 사물에게 생명과 감정을 부여하는 물활론적 사고는
이 시기의 자연스러운 인지적 특성이며 아이들은 자신과 주변 세계를 감정적으로 연결합니다.
이러한 사고는 성장하면서 점차 논리적 사고로 전환됩니다. 친구가 다친 상황에서 책상에게 화를 내는 행동은 단순한 분풀이가 아니라, 친구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 감정을 표현할 방법을 찾는 과정입니다. 이는 유아가 타인의 감정을 인식하고 그에 반응하는 사회적 감정 발달의 중요한 징후입니다. 그래서 이를 존중하고 따뜻하게
반응해 주는 경험은 아이의 자존감과 사회적 감수성을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또한, 교실에서의 언어약속은 아이들에게 규칙을 강요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함께 지내는 공간에서의 안전과 즐거움을 위한 합의임을 이해시키는 과정입니다.
'교실에서 뛰지 않아요'라는 약속은 놀이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더 자유롭고 안전하게 놀 수 있도록 돕는 장치입니다. 아이들이 규칙을 어겼을 때, 그 행동을 단속하기보다 왜 그런 약속이 필요한지를 함께 이야기 나누고, 놀이의 공간을 재구성하는 유연함을 보여준다면 아이들은 규칙을 내면화하고, 타인의 관계 속에서 자율성을 키워가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 시기의 아이들에게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부드럽게 안내하면서도 감정이 안전하게 표현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존재입니다.
공감이 존중받는 교실, 규칙이 이해되는 교실,
그리고 감정이 흐를 수 있는 교실에서
아이들은 자신이 소중한 존재임을 알아갑니다.
ㅣ 우리가 아이들과 정하는 약속은 아이들의 자유를 막는
규칙일까요? 아니면 함께 하기 위한 배려일까요?
ㅣ 책상에게 화를 낸 아이의 행동은 잘못된 걸까요?
아니면 감정을 표현하는 또 다른 방식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