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4주, 월요일
그리기 활동이 있는 날,
오늘은 '보고 그리기'를 해보기로 합니다.
빈센트 반 고흐라는 유명화가의 작품들을 감상하고
그의 그림 중 마음에 드는 그림을 모사해 보는 시간입니다. 말이 모사지 유아기 시기는 그대로 보고 그린다는 개념보다는 본 이미지를 나만의 느낌으로 해석한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기도 합니다. :-)
모두들 집중해서 알록달록 그림을 그리는 중,
한 아이가 '망쳤어'라며 힘껏 종이를 구겨 책상 위에 던지듯 내려놓습니다.
모든 시선이 집중된 아이의 얼굴은 이미 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그 시선이 의식되었는지 민망함에 멀리서도
아이의 거칠고 뜨거운 호흡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아이에게 다가가 "그림이 잘 안 그려졌니?"라고 물으려 구겨진 종이를 천천히 펴 봅니다.
이제 막 그리기 시작한 그림이라 크게 망쳤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꽃의 형태를 그리다가 찌그려진 부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마도 이 부분이 아이에게는 크게 와닿은 거겠지요.
아이의 바람대로 새로운 종이에 다시 그리는 시도를 할 수 있었지만, 아이에게 제안을 하나 합니다.
"민아야, 네가 꽃모양을 마저 완성하면 선생님이 좀 특별한 걸 보여줄 수 있을 거 같아"
선생님의 제안이 솔깃한 민아는 마음이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구겨진 종이를 손으로 다림질을 한 후 나머지
꽃 모양을 완성해 나갑니다.
'도대체 선생님이 이 그림을 가지고 어떻게 특별하게 해 주겠다는 거지?'
아마도 민아의 속 마음은 그러했을 겁니다.
빠른 속도로 그려가는 그 손길이 그걸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다 그렸어요, 선생님'
민아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준비한 물감과 붓으로
민아의 구겨진 그림 위로 색칠을 합니다.
색칠이 다 완성이 되기도 전에 '우~와'라는 환호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옵니다.
구겨진 종이의 질감이 물감과 만날 때마다 특별함을 안겨주니 아이들이 보기에도 신기한가 봅니다.
조금 전 까지도 망쳤던 그림이라 짜증이 가득했던 민아의 얼굴엔, 특별한 그림을 그린 주인공이 되었다는 만족감과 자신감으로 환해졌습니다.
여기저기서
'나도 구겨볼래, 나도~'라는 시도들이 이어진 것은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지요.
유아기 미술활동은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리는 기술을 배우는 시간이 아니라, 아이가 자기표현과 자존감을 형성하는 중요한 발달과정입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하며 그림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드러내고, 그 과정에서 존중받는 경험을 통해 '나는 의미 있는 존재야'라는 확신을 키워갑니다.
아이들이 '망쳤다'라고 느끼는 순간은 자기 가치감이 흔들릴 수 있는 중요한 시점입니다.
이때 선생님이 보여주는 태도는 단순한 위로나 재시도가 아니라, 실수를 새로운 가능성으로 전환하는 존중의 경험이어야 합니다. 불완전해 보이는 모습도 교사의 따스한 시선과 존중속에서 특별한 작품으로 바뀔 수 있으며, 이는 아이에게 '실수도 특별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남깁니다.
발달적으로 유아는 정서적 안정감을 통해 자기표현을 이어가고, 또래 앞에서 존중받는 경험은 사회적 자신감을 키워줍니다. 또한 '다르게 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경험할 때 창의적 사고가 확장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가 길러집니다. 결국 아이의 자존감은 완벽한 결과가 아니라, 실수와 좌절 속에서도 존중받는 과정에서 자라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ㅣ 아이가 '망쳤다'라고 느낄 때, 그 마음을 존중하면서도
다시 도전하도록 돕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ㅣ 실패가 두려움이 아닌 용기로 이어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