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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안 챙겨 줬어요.

11월 3주, 금요일

by thera 테라

아이들은 반복 경험을 좋아합니다.

똑같은 내용의 책을 글자를 보지 않고도 달달 읊을 정도로, 책이 헤어지도록 읽기도 하고

같은 퍼즐을 몇 번이고 맞춰보고 또 맞춰보면서 완성되는 즐거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경험의 횟수를 더 하면서 익숙해져 감을 즐기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함께하는 활동은 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과 활동 내용을 공유하고 추후 활동으로 확장해 가는 기회를 자주 갖는 편입니다.


이번 주에는 '재활용'을 주제로 하는 그림책 활동을 하면서 가정에서도 연계활동으로 이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림책을 가정에서 부모님과 함께 읽어보고 분리수거를 해보자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이들은 너도 나도 '분리수거'활동을 미션수행처럼 신나게 이야기 나눴고

활동에 대한 사전안내가 필요할 듯하여 각 가정으로 이에 대한 공지를 알려드렸습니다.

단, 조건 하나가 있었지요.


이 활동에 대한 모든 주도권은 아이에게 있도록,
재활용에 관련된 책도 아이가 부모님께 설명해 드리고 분리수거도 아이가 직접 준비하고 실천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은 그 조건을 듣고 더 신이 났습니다.


"내가 엄마한테 설명할게요"

"우리 집은 플라스틱이랑 캔도 많은데, 내가 다 분리수거할 거예요"

자신이 주도권을 가진다는 사실은 아이들에게 책임감과 기대감을 동시에 안겨주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활동 다음 날,

아이들은 아침에 오자마자 분리수거 한 이야기로 입을 모으며 가방에서 그림책을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자리에 앉아 자신의 그림책을 펼치고 준비하는데 한 아이만 빈 책상입니다.


책이 없는 이유를 묻기도 전에 아이가 대답합니다.


"엄마가 안 챙겨 줬어요."


혼자만 책을 안 가져온 민망함을 누군가에게 돌리고 싶은 마음도 이해가 되었지만

그 안에는 익숙한 책임 회피의 습관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림책은 아이가 직접 챙겨야 하는 준비물이라고 이야기도 나누었지만 그 책임은 자연스레 '엄마'에게로 향했습니다.


늘 어른이 먼저 챙겨주는 일상이 반복되다 보면, 아이들은 준비의 주체가 자신이라는 감각을 갖기 어려워집니다.

'나는 챙겨야 할 사람이 아니라, 챙김을 받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자기도 모르게 자리 잡게 되는 것이지요.


아이에게 스스로 준비하는 경험은 '나는 할 수 있다'는 감각을 키우는 자존감의 씨앗입니다.


아직은 부모님과 선생님의 손길이 필요한 유아기이지만,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에는

어른이 먼저 챙겨주는 친절보다, 아이가 스스로 챙겨볼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존중이 더 깊은 성장을 만들어 줍니다.


그날 빈 책상에 앉아 있던 아이는 책이 없다는 사실보다,

스스로 준비하지 못했다는 경험을 통해 자신이 할 수 있다는 감각을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유아기는 자율성과 책임감이 서서히 자라나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아직 어른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이지만, 동시에 스스로 해보고 싶어 하는 강한 욕구를

지니고 있습니다.

“내가 할래요”, “혼자 할 수 있어요”라는 말은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자율성을 향한 자연스러운 발달의 표현입니다. 이때 아이가 스스로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갖는 것은 자존감 형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스스로 준비물을 챙기고, 자신의 물건을 기억하고, 필요한 것을 준비하는 경험은 단순한 생활 습관을 넘어서 아이의 자기 효능감을 키우는 과정입니다.

‘내가 할 수 있다’는 감각은 반복된 성공 경험을 통해 자라나고, 그 경험은 아이가 자신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자존감의 기반이 됩니다. 반대로 어른이 모든 것을 대신 준비해 주는 환경에서는 아이가 실수할 기회를 잃게 되고, 그로 인해 자신이 할 수 있다는 감각을 느낄 기회도 줄어들게 됩니다.


물론 유아기는 아직 미숙한 시기이기에 실수도 많고, 빠뜨리는 일도 흔합니다. 하지만 그 실수는 배움의 일부이며, 아이가 다음에는 더 잘해보겠다는 동기를 갖게 하는 중요한 자극이 됩니다. 어른이 먼저 나서서 실수를 막아주는 것보다, 아이가 실수해도 괜찮다는 신호를 주고 다시 시도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태도가 더 깊은 성장을 이끌어냅니다.

특히 준비물과 같은 일상적인 과제는 아이가 책임감을 실천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준비물을 스스로 챙겨 오는 일은 단순한 물건의 이동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역할을 맡고 있다는 인식과 그 역할을 해냈을 때의 성취감을 함께 안겨줍니다. 이는 아이가 ‘나는 중요한 일을 맡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감각을 갖게 하고, 그 감각은 자존감의 핵심이 됩니다.


아이의 자존감은 누군가가 대신 챙겨주는 친절보다, 스스로 해볼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존중 속에서 자랍니다. 어른의 손길이 필요한 시기임을 인정하되,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에게 맡기고, 그 과정을 지켜봐 주는 태도는 아이의 내면을 단단하게 만들어줍니다. 스스로 준비해 본 경험은 아이에게 단지 물건을 챙겼다는 사실보다 더 큰 의미로 남습니다. 그것은 ‘나는 할 수 있다’는 믿음이고, 그 믿음이 아이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됩니다.





함께 생각해 볼까요?


ㅣ 아이에게 '스스로 준비하는 경험'은 어떤 감정을

남길까요?


ㅣ 실수했을 때, 아이가 책임을 외부로 돌리는 습관은 어떻게

형성될까요?그리고 그 습관을 바꾸기 위해 우리가 해줄

수 있는 말과 태도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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