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4주, 수요일
아이들이 제일로 좋아하는 시간인 gym시간!
오늘은 달리기 시합이 있는 날입니다.
아침부터 gym교실에는 꼬깔모양의 콘으로 트랙이 그려지고 선생님의 호각소리도 리듬있게 울립니다.
출발 선에 선 아이들의 표정엔 긴장감과 기대가 섞여있습니다.
"준비, 호르르르~" 호각 소리에 맞춰 아이들이 힘껏 달려 나갑니다.
빠르게 앞자리를 차지하는 아이도 있고, 느긋하게 자기 속도로 뛰어가는 아이도 있습니다.
아이들보다도 선생님들의 응원이 더 힘차게 느껴지는
이 시간에도 각자만의 속도가 존재합니다.
시합은 결국 누군가는 먼저 결승점에 도착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달리기 짝을 정하는 것은 선생님들에게 쉬운일은 아닙니다.
이 작은 경주안에서도 어떤 친구는 달리는데 즐거움을 느끼는 반면, 어떤 친구는 결승점에 본인이 먼저 들어와야 성취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6살의 아이들은 자신과 친구들을 비교하는 시선이 생깁니다.
그 시선에는 누구는 노래를 잘 해, 아는 것이 많아, 달리기를 잘 해 등. 각자 잘하는 것들에 대한 자신감과 서로에 대한 인정이 담겨있습니다.
6살 반에서 평소 달리기를 잘하기로 인정받는 영민이의 달리기 시합은 그래서 친구들도 선생님들도 기대하는 순서였습니다.
출발 선에 선 영민이는 자세를 낮추고 호각신호를 기다립니다.
호르르~~ 호각이 울리자 마자 재빠르게 앞으로 나아가는 영민이의 속도감에 다들 '역시나'를 외쳤습니다.
하지만 코너를 도는 순간 스텝이 엉키었는지 영민이는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사이 함께 뛰던 친구는 영민이를 앞질러 달려갔고 넘어진 영민이의 표정에는 당황과 속상함이 스치는 것이 보였습니다. 안타까움과 당황, 놀람은 영민이의 것만이 아닌, 그 순간 우리 모두의 감정이였습니다.
그러나 더 놀라움과 응원의 힘을 모아준 것은 그 다음의 영민이 행동이었습니다.
어느 순간 벌떡 일어나, 결승선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모습에 우리 모두는 영민이의 이름을 환호하며 박수로 응원하였습니다.
오늘의 시합은 승패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넘어졌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해 달린 영민이의 모습에서 우리 모두는 도전과 용기를 배웠습니다.
결승점에 도착한 영민이의 가쁜 숨결을 따스한 포옹으로 안아주며, 그날, 영민이의 귓가에 속삭여 주었습니다.
"영민이 최고! 너가 자랑스럽다"
그림책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이야기가 눈앞에서 실제로 발생했을 때, 선생님으로서 우리는 아이들의 성장과 배움을 생생히 목격하는 경험이 되었고, 그 모습을 바라본 아이들에게도 깊은 울림으로 남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교육이란 결국 삶 속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 임을 깨닫게 됩니다.
유아기는 대근육과 소근육이 발달하는 과정에 있으며, 신체 조절력과 협응력에도 큰 개인차가 존재합니다.
같은 활동을 하더라도 어떤 아이는 빠르게 달리고,
또 어떤 아이는 넘어지거나 뒤처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결코 부족함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발달 과정의 일부이며 그래서 비교보다는 존중의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특히 6세 전후의 아이들은 또래와 자신을 비교하는 시선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인식은 발달적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신은 잘 하는 것이 없다는 무기력감에 빠질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시기에는 아이가 존중받는 경험을 하는 것이 자존감 형성의 핵심입니다.
승패보다 과정이 인정받을 때, 아이는 자기 존재를 긍정하는 힘을 얻게 됩니다.
선생님의 역할은 단순히 결과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서로 다른 속도와 경험을 존중해 주는데 있습니다. "끝까지 달린 모습이 멋지다". "다시 일어나는 용기가 대단하다"와 같은 언어는 아이들에게 과정이 존중받는다는 확신을 주고 그 확신이 자존감의 씨앗이 됩니다.
유아기의 활동은 경쟁의 장이 아니라, 좌절과 도전 속에서도 존중받는 경험을 통해 자존감을 키우는 배움의 장입니다. 아이들은 실패와 눈물 속에서도 존중받을 때 자기 존재를 긍정하게 되고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경험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힘으로 이어집니다. 아이들은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인정받을 때, 자신을 긍정하는 마음을 키워갑니다.
ㅣ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순간을 인정받는 경험이,
아이들의 마음에 어떤 힘을 남길까요?
ㅣ 좌절 속에서도 격려받는 순간이, 아이들의 성장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