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4주, 목요일
다섯 살 친구들과 함께하는 원내 캠프를 엽니다.
1박 2일.
우리가 매일 오가던 원에서 하룻밤을 지낸다는 사실에 마음속 기대와 두려움이 뒤섞입니다.
원에서는 씩씩하고 힘차게 캠프구호를 외치다가도
집에만 가면 엄마품. 가족품을 떠날 엄두를 내지 못하고 눈물을 보이는 친구소식도 들렸습니다.
그래도,
내 친구들도 함께 한다는, 선생님들도 함께 한다는 사실에 위안과 용기를 내어
드디어 우리는 1박 2일 캠프 입소식을 시작합니다.
부모님께 허락받은 어린이 인생에 있어 첫 외박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 어. 요' 힘찬 구호와 함께
캠프의 첫 시작은 등반입니다.
5시가 넘어 출발하는 산행은, 이른바 야간 산행입니다.
짧아진 낮의 길이는 산을 오르는 내 짙은 밤의 색을 더하고 친구들과 나란히 줄을 지어 오르는 산길은
꼬불꼬불 울퉁불퉁. 오를수록 아이들의 발걸음도 느려집니다.
낙엽 밟는 소리,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 새들의 푸드덕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걷는 이 길에 내 짝꿍의 따스한 손과 함께 든 손전등이 어둠을 비추는 작은 길이 되어 줍니다.
드디어 도착한 곳에는 커다란 밤나무 한 그루가 우리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고대하던 다람쥐 친구를 만날 수 있을까요?
"다람쥐야 우리가 왔어" 기대에 찬 아이들의 목소리에 후드득 무언가가 땅에 떨어집니다.
"밤이다, 밤이야~" 아이들은 가져간 보자기에 분주하게 밤을 줍기 시작합니다.
선생님들이 힘들게 들고 올라간 밤들이 아이들의 주머니로 소옥쏙 모아집니다.
다람쥐에게 줄 밤알들은 하나씩 모아 남겨두고 오는 이쁜 마음도 잊지 않았지요.
밤나무 아래에서의 준비된 이벤트, 밤수확을 마치고 원으로 돌아온 우리들은 저녁만찬을 엽니다.
열심히 움직인 우리들에게 저녁이 꿀맛이 아닐 리 없습니다.
한 그릇 더를 외치던 아이들은 세 그릇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미니올림픽, 잠옷 패션쇼, 신나는 야광봉 댄스까지..
우리들의 하룻밤은 이렇게 깊어갑니다.
포근한 이부자리에 나란히 누운 우리는 오늘의 즐거웠던 하루를 되새김질하느라 조잘조잘 분주합니다.
친구들과의 늦은 밤 이 수다가 즐거워서,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이겨보려 애를 쓰지만
오늘 하루의 고단함에 스르르 잠이 듭니다.
아이들에게 있어 첫 외박은 단순한 캠프 일정이 아니라 스스로를 시험해 보는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집을 떠나 낯선 밤을 맞이하는 두려움 속에서도 아이들은 부모와 선생님의 신뢰, 친구들과 함께 함을 통해 용기를 냅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이 존중받을 때, 아이는 비로소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부모님이 허락해 준 외박, 선생님이 마련해 준 안전하고 즐거운 공간과 시간, 친구와 함께 나누는 작은 배려가 모두 존중의 메시지로 전달됩니다.
산길을 오르며 느린 발걸음을 존중해 주는 교사의 시선, 밤을 줍는 작은 손길을 소중히 여겨주는 친구의 마음, 그리고 함께 웃고 즐기는 활동 속에서 아이들은 존중받는 경험이 곧 자존감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몸으로 배우게 됩니다.
자존감은 거창한 성취에서만 생기지 않습니다. 낯선 밤을 무사히 보내고, 작은 도전을 끝까지 해낸 경험이 아이에게 “나는 할 수 있다”는 자기 확신을 심어줍니다.
결국 존중은 아이에게 용기를 주고, 용기는 성취를 낳으며, 성취는 자존감을 키웁니다.
선생님으로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아이의 두려움조차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함께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줄 때 아이는 스스로를 긍정하는 힘을 얻게 됩니다.
아이의 첫 외박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존중과 자존감이 맞닿는 성장의 자리입니다.
선생님이 존중을 실천하는 순간, 아이들은 자신을 믿는 법을 배우고, 그 믿음은 평생을 지탱하는 자존감의 뿌리가 됩니다.
ㅣ 오늘 하루, 우리 반 아이들이 “나는 할 수 있다”는 확신을
느낄 수 있는 작은 도전을 어떻게 마련해 줄 수 있을까요
ㅣ 존중받는 경험이 쌓일수록 아이는 자존감을 키워갑니다.
우리는 아이가 존중받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을
얼마나 자주 만들어주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