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주, 금요일
드디어 우리들의 자랑대회가 시작됩니다.
씩씩하게 행진곡에 맞춰 입장하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긴장감도 엿보이지만,
부모님과 함께했던 활동들의 여운이 이어지면서 자신감도 느껴집니다.
자리를 정돈하고 바라본 그곳에는 우리 엄마. 아빠, 친구의 엄마. 아빠도 자리하고 계시며
큰 박수로 우리들을 맞이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첫 번째 순서는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나란히 옆으로 한 줄 기차 해서 서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부모님들의 표정에는 기대가 담긴 웃음꽃이 활짝 피어있습니다.
맨 앞의 친구를 시작으로, 한 명. 두 명.
모두 각자의 이야기들을 마치면서 큰 박수와 환호가 이어집니다.
드디어 마지막, 상윤이의 차례가 왔습니다.
평소 친구들과 함께할 땐 짓궂은 모습에 거침이 없다가도
혼자 발표하거나 이야기를 할 때면 긴장된 시선으로 한참을 바라보기만 할 뿐 도통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는 친구였습니다.
상윤이의 순서가 오자, 친구들도 선생님도 상윤이에게 시선이모입니다.
역시나 오늘도 긴장된 표정으로 서있는 상윤이에게
"상윤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려줄 수 있을까?"
질문을 하고 한참이 지나도 정적이 흐릅니다.
이를 바라보는 상윤이의 부모님은 물론, 함께 해주시는 부모님들의 마음도 덩달아 조마조마해지는 듯합니다.
그 순간, 상윤이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연못에 평화롭게 떠있는 오리들이 그 고요함을 유지하기 위해 물속에서 수차례 오리발을 힘차게 움직이듯,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용기를 끌어올립니다.
처음엔 입모양이 오물오물 움직이는가 싶더니 작은 목소리로 시작된 상윤이의 말은 점점 또렷해지고, 마침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힘차게 이야기하며 감사합니다로 마무리 짓습니다.
순간, 정적은 환호와 박수로 바뀌고
부모님들은 물론 친구들도 선생님들도 상윤이의 용기를 대단하며 엄지를 세우며 축하합니다.
오늘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그동안 남몰래 수없이 힘차게 움직였던 오리발이,
드디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유아기는 자기표현과 사회적 관계 형성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기입니다.
또래와 함께할 때는 활발하고 자유롭게 감정을 드러내지만, 혼자 무대에 서야 하는 순간에는 긴장과 불안으로 쉽게 위축되곤 합니다. 이는 자연스러운 발달 과정으로, 아이들은 아직 자기 조절 능력과 사회적 기술을 배우는 중이며,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그렇기에 발표를 앞두고 머뭇거리는 모습은 부족함이 아니라 성장의 과정입니다.
무대 위에서 목소리를 내기까지의 기다림은 단순한 지체가 아니라 내적 힘을 모으는 시간입니다.
아이는 숨을 고르고, 마음을 다잡으며, 스스로를 믿어보려는 작은 용기를 키워갑니다.
처음에는 입술만 오물거리다가도 점차 목소리를 내고, 그 목소리가 또렷해지는 과정은 자기 조절과 자기 확신이 발달하는 순간입니다. 이는 유아기의 중요한 발달 과업인 자기표현 능력과 사회적 자아 형성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또한 기다림은 공동체 속에서 완성됩니다.
부모와 친구, 교사의 따뜻한 시선과 박수는 아이에게 “너를 응원해, 잘할 수 있어!”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 응원은 불안을 희망으로 바꾸고, 아이가 도전에 의미를 부여하도록 돕습니다.
결국 기다림은 아이가 자기 내면을 다스리고, 타인을 존중하며, 공동체 속에서 자신을 확인하는 발달적 도약의 시간이 됩니다.
무대 위에서 울려 퍼진 목소리는 단순한 발표가 아니라, 유아기의 발달이 기다림과 응원 속에서 어떻게 꽃피는지를 보여주는 교육의 장면입니다.
겉으로는 고요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없이 움직였던 오리발처럼, 아이들은 기다림 속에서 힘을 모으고 성장합니다.
기다림은 곧 교육의 다른 이름이며, 아이들의 발달을 가장 따뜻하게 지켜볼 수 있는 순간입니다.
ㅣ 아이가 망설이는 시간을 우리는 어떻게 지켜주어야
할까요?
ㅣ 겉으로는 고요하지만 내면에서 힘을 모으는 아이의
과정을 우리는 어떻게 지지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