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짧게 요약하면 기택(송강호 분)의 가족들과 문광(이정은 분)의 가족들이 주인집 박 사장(이선균 분)의 집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싸움을 벌이는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박 사장은 기택의 손에 죽고 맙니다. 기택과 문광의 가족들을 기생충이라 생각한다면 숙주(박 사장)를 두고 싸우는 기생충들의 사투를 그린 영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기택은 자기 손으로 숙주를 죽였음에도 박 사장의 집을 차지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숙주 없이 혼자 힘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기생충이기 때문이지요. 기택은 결국 새로운 숙주에게 숨어들게 됩니다. 이제 그는 숙주를 죽이는 실수를 다시는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이러스 역시 숙주의 몸에 기생해 번식을 꾀한다는 점에서 기생생물의 한 종류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바이러스는 무엇일까요? 에볼라 바이러스는 치사율이 70~90%에 이르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입니다. 에볼라는 숙주 안에서 빠른 속도로 번식하기 때문에 숙주를 곧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하지만 숙주가 죽게 되면 단독으로 생존할 수 없는 에볼라 바이러스도 결국 숙주와 운명을 함께 하게 되지요. 에볼라 바이러스가 생명을 이어가려면 숙주가 사망하기 전에 다른 숙주에게로 옮겨가야 합니다. 하지만 에볼라에 걸린 숙주는 오래지 않아 사망에 이르기 때문에 바이러스가 다른 숙주에게로 이동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반면, 우리를 곤경에 몰아넣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치사율이 2~3% 수준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그 어떠한 질병보다 인류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전파력 때문입니다. 무증상 감염자나 경미한 질환을 앓는 숙주가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다른 이들에게 바이러스를 마구 퍼뜨리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코로나와 에볼라에 동시에 감염된다면 그 사람은 아마도 에볼라 때문에 죽게 될 것입니다. 감염된 숙주 내 개체 수는 에볼라가 많겠지만 길게 보면 승리는 역시 코로나의 것입니다. 코로나는 하나의 숙주 내에서 증식 속도가 에볼라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것을 일부 포기함으로써 전파력이라는 더 훌륭한 무기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바이러스의 존재 이유가 생존과 번식에 있다면 에볼라보다는 코로나가 자신의 목적을 훨씬 더 효과적으로 달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에볼라보다는 코로나가 더욱 진화된 바이러스라 할 수 있습니다. 영화 ‘기생충’에서 기택의 식구들은 박 사장 가족과 긴밀한 영향을 주고받으며 네 명이 기생했고 문광은 자신과 남편, 둘만이 차분하고 은밀하게 기생했습니다. 기생한 숫자만 보면 보면 기택이 더 성공적인 기생을 한 것 같지만 그는 결국 박 사장을 죽이고 맙니다. 하지만 눈에 띄는 피해를 주지 않으며 숙주와 오랜 세월을 함께 한 것은 오히려 문광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숙주를 죽인 기택보다는 문광을 더 진화한 기생충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기생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인류도 지구를 숙주로 하는 기생충일지 모릅니다. 지구 없이는 생존과 번식을 하지 못하며, 지구에 해를 끼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류가 지구의 기생충이라면, 생물학적으로 가장 진화된(훌륭하고 고귀한) 인간은 누구일까요? 지금 당장의 안위만을 위해 숙주를 해치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은 아직 진화가 덜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긴 안목에서 숙주의 건강을 염려하는 인간이 진화 단계 상 더 높은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여기 국경과 민족을 넘어 지구라는 숙주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스웨덴의 십 대 환경운동가 툰베리, 국제 환경운동 단체 그린피스 등이 이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인류라는 종의 번영을 위해 지구의 건강을 걱정하는 사람들입니다. 환경운동은 나와 동떨어진 일처럼 느껴질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시각은 나를 에볼라와 기택의 함정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정치도 만인을 위한 일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국가와 민족의 경계 안에 갇혀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나나 내 핏줄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반드시 죽을 것이고, 내 가문도 세대가 지날수록 다른 피가 섞여 흐려질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나 하나만 생각하기보다는 종의 번영을 우선하는 것이 더욱 현명한 일입니다. 우리 모두는 지구에 기생할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아무리 기생충이라지만 그래도 좀 더 고등한 기생충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경비원 아저씨는 여태껏 살면서 만났던 그 어떤 이보다 분리수거일에 열과 성을 다하고 단지 주변을 가꾸십니다. 너무 열심히 하시는 것 아니냐는 이웃의 질문에 아저씨는 "나야 이미 살 만큼 살았으니 상관없는데 우리 애기들은 어쩔 거야. 내가 이런 거라도 잘 해줘야지."라고 대답하십니다. 세상에는 저급한 생물이 고등한 척을 하기도 하고, 실제로 그렇게 평가받기도 합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한다며 뒤로는 자기 뱃속만 채우려는 하등 생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보다는 우리 경비원 아저씨 같은 분들이 훨씬 더 고귀한 생명체입니다.
최근 선진국에서 화성에 대한 탐사가 한창입니다. 지구와 인류를 기생의 관점에서 파악한다면 우주 탐구는 새로운 숙주를 찾으려는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화성에 대해 알아내는 것보다는 지구의 아픔을 줄이고 지구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 먼저입니다. 우리가 지구와의 관계를 기생에서 공생으로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언젠가 화성도 인류라는 고약한 기생충에 감염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