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이의 등장
말 안 듣는 중학교 2학년 아들이 하나 있다고 해봅시다. 공부나 좀 했으면 좋겠는데, 말도 안 듣고 허구한 날 게임만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어느 날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대화의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아빠: 아들, 왜 공부 안 해?
아들: 도저히 못 하겠어요. 나랑은 안 맞는 거 같아요.
아빠: 그럼 나중에 뭐 하려고 그래. 딱히 잘하는 것도 없잖아?
아들: 연예인 쪽으로 해볼까 해요.
아빠: 연예인? 니가 노래를 잘 하냐… 춤을 잘 추냐… 그렇다고 잘 생긴 것도 아니잖아?
아들: 저도 아는데, 송강호나 황정민, 박정민 이런 사람들도 톱스타인데요 뭘. 공부는 도저히 못 하겠는데, 연기 같은 건 하라고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빠: 연예인 지망생이 2백만 명이란다. 그중에 스타가 몇 명이나 될 것 같아? 공부하기 싫다고 연예인이 되겠다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커서 뭐가 되려고 저러지?
아들: 연예인요.
아빠: 으...으...
이 속 터지는 이야기는 좀 뒤로하고 최근에 나온 KB의 부자보고서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보고서에서는 금융자산 10억 원 이상을 가진 사람들을 부자로 정의했고 이들은 2020년 기준 39만 3천 명입니다. 부자들이 꼽은 부의 원천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료: KB
사업소득이 41.8%로 가장 높고 그다음은 부동산투자가 21.3%입니다. 근로소득은 6.8% 밖에 안 되는군요. 부동산투자와 금융투자를 합하면 33%가 넘습니다. 부자들 중 세 명 중 한 명은 투자로 부자가 되었네요. 다음과 같은 질문이 예상됩니다.
“투자로 부자가 된 사람이 1/3이나 되네요. 투자로 부자를 노리는 것도 해볼 만한 것 아닌가요?”
“월급도 적고 상속받을 것도 없어요. 근로소득으로 부자 된 사람은 7%도 안 돼요. 투자 밖에 답이 없는데, 왜 투자는 자꾸 부차적인 것이라고 하시나요?”
근로소득으로 부자가 된 사람은 얼마 안 되지만 본업(사업과 근로소득)으로 부자가 된 사람은 48.6%에 달합니다. 결국 부자가 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건실한 사업체의 사장님이 되는 것입니다. 그룹 회장님이기에 논란이 있지만 워런 버핏을 투자자로 분류하더라도, 세계 10대 부자에 투자자는 워런 버핏 한 명뿐이고 10명 중 꼴찌입니다. 순위에 있는 나머지는 글로벌 기업을 창업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나라 부자 순위를 봐도 투자자로 순위에 든 사람은 한 명도 없고 대부분 기업 회장님들입니다. 결국 큰 부자가 되려면 사업을 하는 것이 정답입니다. 그럼 근로소득자는 답이 없는 걸까요?
보고서에서는 금융자산이 5억~10억 원인 그룹을 준부자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답한 부의 원천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료: KB
준부자로 오니 부의 원천 중 근로소득이 21%로 껑충 뜁니다. 이 말은 부자에서 준부자, 준준부자 쪽으로 조금씩 내려올수록 근로소득자가 더 많아질 것이라고 쉽게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결국 근로소득자가 부자가 되려면 근로소득을 모아서 준준준(?) 부자 정도의 평균 이상 부를 이룬 다음에 점차 투자소득이 높아지는 그림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점점 더 부자가 될수록 부의 원천이 근로소득에서 투자 소득 쪽으로 옮겨가게 되는 것이지요. 부자들이 생각하는 종잣돈이 얼마인지 아시나요? 보고서에 따르면 8억 원입니다. 부자들은 8억 원 정도는 굴려야 투자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1억 원도 못 모으면서 투자로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부자가 되는 것은 어렵습니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 인구가 5,178만 명이라고 하니 금융자산 10억 원 이상의 부자가 될 확률은 0.76%(39.3만/5,178만)입니다. 상위 1% 안에 들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투자로 부자가 되는 것은 0.25%(0.76*0.33)의 확률입니다. 거부가 되는 것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면 평범한 사람들의 목표는 상위 1%에 드는 것이 아니라 안락한 노후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 목표는 근로소득자나 일반 자영업자 또는 프래랜서도 노력 여하에 따라 충분히 달성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투자에 목을 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절약은 힘들고 사업은 더더욱 자신이 없지만, 투자는 만만하고 쉬워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판단은 직원관리는 힘들고 음식도 할 줄 모르니 카페나 차리자거나, 공부하기 싫으니 공부보다는 쉬워 보이는(실제로는 그렇지도 않지만) 연예인이나 하자는 중2 아들과 같은 수준의 생각입니다. 부자들의 부의 원천 중에서 가장 높은 비중이 본업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답답이: 부자가 되고 싶어요. 투자 방법 좀 알려주세요.
눈사람: 초보자시죠? 먼저 본업의 소득을 착실하게 모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답답이: 부업이나 절약 같은 건 별로예요. 투자 방법을 알려주세요.
눈사람: 투자로만 부자가 되는 것은 어렵습니다. 확률이 너무 낮아요.
답답이: 코인해서 천만 원으로 30억 벌었다는 사람도 있고, 부동산으로 3년 만에 부자 된 사람도 있다는데요. 유튜브에 그런 사람 널렸어요.
눈사람: 성공한 사람만 보여서 그런 겁니다. 부자 되기가 쉽다면 부자가 아닌 사람이 드물 거예요. 성공한 사람만 보지 말고, 제발 실패한 사람이 몇 명 일지 생각해 보세요. (부글부글)
답답이: 우리 회사에도 한 명 있는데요.
눈사람: 회사 전체 인원을 보셔야죠! 기네스북에 보면 벼락 7번 맞고 살아난 사람도 있구요, 아주 가끔은 죽었다가 깨어나는 사람도 있어요. 세계 인구가 몇 명인데 그런 일이 없겠어요. (그렇지만 넌 죽으면 못 깨어난다고! 죽었다 깨어나도 못 깨어나! 아오...)
답답이: 아까부터 왜 자꾸 저만 안 된다고 하시는 거에요? 투자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니까요.
눈사람: 본업이나 절약이 힘들다고 투자로만 승부 보겠다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지금 상태로는 수익이 나 봤자 다 써버려요. 아… 중2병 아들 공부시키는 게 더 낫겠네.
답답이: 그래서 언제 부자 되겠어요? 그런 건 저랑 안 맞아요.
눈사람: …… (심정지)
여러분은 제발 제 마음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훌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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