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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사람 Jul 23. 2022

행복의 총량을 늘리는 방법

절약은 절제와 다름없고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희생하는 것이라고 많이들 생각합니다. 하지만 절약은 이렇게 단순하게만 볼 문제가 아닙니다.


여기 편의상 가격과 비례하여 만족감을 주는 동일 종류의 세 가지 상품이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가방 세 개나 양복 세벌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합니다.)



가격은 C급이 50만 원, B급이 150만 원, A급이 300만 원이고, 각각은 가격과 비례해 50, 150, 300의 만족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50 + 150 + 300 = 500’이므로 세 상품을 모두 구입하면 구매자는 500의 만족감을 누려야 합니다. 하지만 상품을 구매하는 순서와 조합에 따라 실제 느끼는 만족감에는 차이가 발생합니다.


1) C급 → A급 → B급: 50 + 300 + 150 = 450?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C급, B급, A급의 순서로 소비를 하게 되면 500의 만족감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의 경우처럼 C급 → A급 → B급의 순서로 소비를 하게 되면 변화가 생깁니다. 300만 원짜리 상품을 한번 사고 나면 이후에는 150만 원짜리를 사도 이상하게 150이 아니라 100 정도의 만족감 밖에 느껴지지 않습니다. 500만 원을 썼지만 만족감은 500이 아니라 450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눈높이가 A급에 맞춰지면서 B급이 별 매력 없어 보이게 되고, C급은 하찮은 물건으로 느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소비에 사용할 수 있는 돈은 한정적입니다. 따라서 최대한의 기쁨을 누리려면 상대적으로 품질과 가격이 낮은 상품부터 즐겨야 합니다. 고급진 것부터 손대면 중급이나 저급에서 느끼는 만족을 온전히 향유할 수 없게 됩니다. 맨날 한우만 먹는다면 처음에는 좋겠지만, 좀 지나면 한우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한우가 아니면 입에 못 대는 사람이 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가격에 맞는 만족감을 온전히 느끼려면 급이 낮은 상품부터 단계적으로 소비해야 합니다. 사회초년생 시절부터 명품을 소비하기 시작하면 지출이 과도해지는 것은 물론, 훗날 양육비 증가나 은퇴 등으로 소비수준을 낮춰야만 할 때 실망과 불행이 찾아오기 쉽습니다.


2) C급 → X → A급: 50 + 300 = 450?


만약 C급 상품을 사용한 다음 B급 상품 대신 A급 상품으로 바로 넘어가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지출 금액은 350만 원이 되고 만족감은 350(=50 + 300)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350만 원을 쓰고도 만족감을 450으로 늘릴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B급 상품으로 넘어갔어야 할 시기까지 C급 상품을 오래 사용한 후에 A급 상품으로 넘어가는 것이지요. B급에서 A급으로 넘어갈 때보다 C급에서 A급으로 넘어가면 상품의 수준 차이에 따른 만족감이 더 크게 증가하고, 오래 기다린 만큼 소비행위 자체를 통한 만족감 역시 증가하게 됩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C급 상품의 만족감은 300이 아니라 400이 될 수도 있는 것이지요.


3) C급 → B급 → A급: 50 + 150 + 300 = 750?


C급 → B급 → A급 순서로 소비를 하게 되면, 당연히 500만 원을 지출하고 500의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50 + 150 + 300 = 500). 그런데 똑같이 500만 원을 지출하고 만족감을 750으로 늘릴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제품별 사용기간을 늘리고 구매 빈도는 줄이는 것입니다. 일주일 만에 세 가지 상품을 모두 사버린 사람과 3년마다 한 가지 씩 구입한 사람의 만족감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일주일 만에 세 상품을 모두 산다면, A급 제품을 사게 되는 순간 B급과 C급은 공간만 차지하는 천덕꾸러기가 됩니다. 500만 원을 썼지만 만족감은 300 정도 밖에 얻지 못하지요. 하지만 3년마다 한 가지씩 구매한다면 처음 3년은 50의 만족을 온전히 누리게 되고, 다음 3년 동안에는 B급 상품으로 더 큰 만족감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때 B급 상품이 주는 만족감은 150이 아니라 200도 될 수 있습니다. 1년마다 핸드폰을 바꾸는 사람은 최신형이 아니라면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합니다. 하지만 5년마다 핸드폰을 바꾸는 사람은 새로 산 핸드폰이 구형이라도 이전 것보다 좋아진 점을 눈에 띄게 느낄 수 있는 것이지요. 게다가 소비 빈도가 뜸해지면 소비의 의미와 기쁨 역시 더욱 커지게 됩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표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만족/지출’은 만족을 지출 금액으로 나눈 것으로 소비한 1원당 느낄 수 있는 만족감을 의미합니다. (만족감의 기준은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계산 결과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지출 금액 대비 만족감이 가장 높은 것은 (라)의 경우입니다. 결국 소비할 돈이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소비하려면, 덜 비싼 상품부터 소비해야 하고 한번 구매한 상품은 오래 사용해야 합니다. 이미 비싼 제품을 사버렸다면 같은 종류의 상품 구매는 자제하고 가능한 오래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유층 자제들 중 일부가 불법 약물에 손대거나 수위를 넘는 일탈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오냐오냐 커서 그런 것일까요? 아무리 오냐오냐 컸다 한들 불법 약물도 손쉽게 용서할 부모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이 일탈에 빠지는 것은 더 큰 쾌락이나 자극을 느끼기 위해서입니다. 항상 호텔보다 좋은 곳에서 생활하고 최고급 음식을 먹는다면, 웬만큼 호화롭지 않고서는 물질적인 행복을 체감하기가 어렵습니다. 결국 이들이 더 큰 쾌락을 느끼려면 약물과 같은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자극이 필요한 것입니다.


저개발 국가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높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어르신들 중에서도 먹고살기 힘들던 어린 시절이 더 행복했다고 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지요. 왜 그런 것일까요? 없던 시절에는 작은 것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아이에게는 새 양말 한 켤레도 자랑거리가 되고, 명절에 먹는 과자 한 봉지도 일 년을 기다리는 행복이 될 수 있습니다. 사실 물질적으로만 보면, 우리 대부분은 조선시대 왕보다 행복해야 합니다. 왕이라 한들 에어컨 없이 여름을 지내야 했을 것이고, 수세식 화장실이나 해외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을 테니까요. 지금은 서울에서 전 세계의 음식을 맛볼 수 있지만, 당시의 왕들은 국내의 음식들도 다 맛보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먹고수 코미디언 김준현 씨는 여름에 시원한 맥주 생각이 나면, 그때부터 물도 안 마시고 오히려 몸을 더위에 지치도록 만든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쳐 쓰러지기 직전에 가장 시원한 한 모금을 즐긴다고 하지요. 겨울에 국밥을 먹을 때는 주문을 한 후에 일부러 밖에 나가서 덜덜 떨다가 들어와서 먹는다고 하지요. 이렇게 하면 뜨끈한 국밥의 맛이 극에 달한다고 합니다. 절약은 부를 키우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행복의 총량을 키우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물질적인 행복을 최대화하려면 가격뿐만 아니라 시간도 고려해야 합니다. 30대에 소비로 정점을 찍는다면 이후 남은 70년간 남아있는 것은 내리막길뿐입니다. 본인의 연령대별 소비수준에 대한 큰 그림을 그려봅시다. 긴 안목에서 살펴보면, 지금 당장보다는 인생 전체를 위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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