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단녀'였다.
졸업을 하고 바로 결혼을 하여 내 나이 25살이었다. 사회생활이라면 고작 조교 활동으로 1년 5개월 동안의 짧은 시간이다. 결혼을 한 뒤에도 사무직으로 일을 하면서 맞벌이 부부를 잠깐 하였다.
그 이유는 생각지도 못한 임신으로 유산까지 하면서 내 몸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일을 꾸준하게 하지 못하여 반복적인 스트레스 증후군이 나타나면서 힘들었다. 그 후 나는 나만의 시간을 갖고 공부를 하면서 자발적인 '경단녀'로 지냈다.
매일 아침 신랑이 출근하는 걸 보면서 '나도 일하고 싶다' 생각을 했지만 나만의 시간을 통한 공부하는 시간이 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그 내면적으로는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이 크게 자리를 잡아 선뜻 일을 시작할 수 없었다.
25살 꽃다운 나이였지만 나의 몸은 40대의 체력으로 '저질체력'이었다. 조금만 일을 하면 만성 피로감이 몰려왔고, 아프기도 많이 아팠던 나의 젊은 시절이 떠오른다. 하지만 지금은 엄청난 체력과 에너지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시간이 흘러 4년 만에 아이가 생겼고, 둘째가 생기며 8년을 일을 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경력이 단절되었고 아이들과의 시간을 공유하며 스스로 공부를 계속했다. 나도 꼭 아침 9시에 출근하여 저녁 6시에 퇴근하리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첫째 4살, 둘째 2살이 되어 큰 결심을 한다. 아이들을 기관에 맡기고 일을 시작하려고 했는데 이 또한 현실적으로 힘들었다. 전 세계적인 펜데믹 현상인 코로나19가 터졌다. 그렇게 3개월을 더 집에서 아이들을 보며 또 기회를 기다렸다.
복직을 하려고 하던 순간,
원장님' 부재중 전화가 찍혔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에 면접을 보고 난 뒤 출근을 보류했던 곳이다. 원장님께서 '선생님 코로나는 계속 우리가 가져가야 할 것 같아요. 선생님 출근하셔도 되지 않을까요?'
순간 스쳐가는 생각, 나를 찾아주는 곳이 있다니 정말 감사했다. 지칠 때로 지쳐있던 나에게 기회가 왔다.
드디어 나도 일을 한다. 이제 나도 워킹맘이다.!
정말 기분이 날아가는 것 같았다. 오전에는 둘째 어린이집 적응을 하고, 오후에는 애들 수학을 가르쳤다. 다행히 둘째는 적응력이 빨라서 엄마와 떨어지는 시간이 빨랐다. 아이도 엄마의 기분과 상황을 아는 것 같다. 나를 도와주는 둘째에게도 감사하며 새롭게 일을 시작했다.
경단녀에서 워킹맘으로 전환하는 2년 차 워킹맘으로 일과 육아에서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일하는 순간이 너무 좋다. 아이는 시간이 가면 큰다. 엄마도 성장하기 위해서는 공부하고 일을 해야 한다. 시간이 갈수록 아이에게 멋진 엄마가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공부할 것이다.
내 아이가 엄마를 응원하며 '엄마 오늘도 수고했어요.'라고 말할 때 정말 감격스럽고 보람 있다. 아이도 엄마가 일하는 걸 응원하니 지쳐도 캔디처럼 일어날 수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