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피부를 위한다면

by 배즐성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없었다.


임신을 했고 '베이비페어'라는 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베이비페어는 몇 일간만 오픈하는 육아용품 전문쇼핑몰과 같았다. 길게 늘어선 줄을 기다려서 들어가면 신세계가 펼쳐진다. 출산과 육아를 위한 초대형 마트로 없는 게 없다. 물티슈, 분유, 유모차에서부터 침구, 가구, 도서에 이르기까지 직접 보고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부스를 구경하다가 어떤 천기저귀 업체에 머무르게 되었다.


아기의 피부를 위한다면 내가 조금 부지런만 떨면 되지 않을까? 엄마라면 아이를 위해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천기저귀도 사용하기 편하게 잘 만들어졌는걸?


주변에서는 말렸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느냐, 요즘 기저귀 잘 나와서 아기 피부가 쉽게 상하지 않는다, 몸조리가 우선이지 손빨래하다가 손목 다 나간다, 진정한 지옥을 경험해 보고 싶어서 그러는 거냐.


못 할 것 없다고 생각했다. 천생리대의 상쾌함과 보송함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마땅히 해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또 다른 고생길로 나를 인도했다.




생후 10일 정도부터 천기저귀를 사용했다. 특히 신생아 때는 하루에 오줌과 변을 보는 횟수가 많기 때문에 수시로 갈아주게 된다. 10분마다 한 번씩은 오줌을 싼 건 아닌지 계속 체크해 줘야 했다. 초보엄마인 나에겐 기저귀가 불편해서 아이가 울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느긋함과 차분함은 없었다.


일회용 기저귀는 말아서 쓰레기통에 버리면 끝이지만, 천기저귀는 뒤처리가 필요하다. 오줌 기저귀는 고무장갑을 끼고 조물조물 물로 헹구고, 대변 기저귀는 변기 위에서 샤워기로 변을 어느 정도 털어내고 대강 애벌빨래를 해둔다. 어느 정도 뒤처리가 된 기저귀들은 한 데 모아 물에 담가둔다. 그리고 매일 기저귀만 모아 세탁기를 따로 돌린다.


쉽지만은 않았지만 돌봐야 할 아이가 한 명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천기저귀 사용은 외출이 많아졌던 7개월이 지나 그만두게 되었다. 아이를 위한다는 목적이었지만 사실은 내 만족이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왜 굳이 천기저귀를 고집했을까 생각해 보니 중학생 때의 엄마가 보였다.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 무렵이었다. 화장실에 갔다가 팬티에 피가 묻어 나온 것을 발견했고, 이는 곧 '월경'이 시작되었음을 직감했다. 엄마에게 이 소식을 조심스레 전했다. 엄마는 일회용 생리대를 사주시면서 하얗고 널따란 천도 함께 사셨다.('소창'이라고 불리는 천인 것으로 짐작한다.)


일회용 생리대와 달리 천생리대는 부드럽고 편안했다. 혹시 바지에 묻어 나오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어 밖에 나갈 때는 일회용을 쓰고 집에서는 천생리대를 착용했다. 사용한 천생리대는 베란다 한편에 있는 삶음 전용 냄비 안에 두었다. 그렇게 엄마는 귀찮은 기색 한 번 내비치지 않으시고 5년간 매월 피가 묻은 천생리대를 빨고 삶으셨다.


어렸을 적 내가 느꼈던 엄마는 전혀 헌신적이고 희생적이지 않았다. 학교 가야 할 시간이 되어도 잠을 깨워주지 않으셨으니까. 지각할 뻔 한 어느 날 왜 깨우지 않았는지 묻자 '학교는 네가 가지, 내가 가냐'며 응수했던 엄마다. 숙제를 했는지조차 물어보지도 않으셨기에 오히려 서운함을 느낄 정도였다. 자녀를 살뜰하게 챙겨주거나 관여하는 스타일이 아니셨다.


그런 엄마가 묵묵히 천생리대를 빨아 주셨다. 그래서일까? 내 자녀에게도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는지도 모르겠다.




천기저귀는 발진 예방에 효과적이고 환경에 유익하고 비용이 절약된다는 장점이 있다. 그에 반해 자주 갈아줘야 하고 손빨래가 필요해 관리를 지속적으로 해줘야 한다는 단점도 물론 있다.


<삐뽀삐뽀 119 소아과>의 저자 하정훈 선생님은 잘 갈아주기만 한다면 천 기저귀든 일회용 기저귀든 상관이 없고, 의학적인 측면만 고려한다면 일회용 기저귀가 더 낫다고 하셨다.


그렇다. 천기저귀가 절대선은 아니다. 괜한 의무감에 시작하기보다는 자기의 소신대로, 감당이 가능한 선까지 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