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로봇은 아니잖아?

by 배즐성
부모의 욱은
아이의 감정 발달을 방해하고,
부모 자녀의 관계를 망치며,
아이의 문제 해결 능력도 떨어뜨린다.

-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 오은영 저


나는 웬만해서는 화를 내지 않는다. 연애할 때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다. 지금의 남편에게도 제대로 화를 내 본 적이 없다. 회사에서도 화를 내기보다는 참는데 익숙했다. 불만이 있어도 그냥 참고, 오해를 받아도 그냥 참았다. '보살'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화를 내기보다는 잘 참는다.


자만했다.


아이는 한 시도 가만히 누워있지 않으려 했다. 울어대는 아이를 달래고 달래 보았지만 아이의 끊임없는 요구는 내 두 손을 모두 묶어버렸다.


자꾸 안아주면 손 탄다고 안아주지 말라고 한다. 안지 않으면 그치지 않으니까 그 울음소리가 견디기 힘들어서였는지 자꾸 안았다. 등센서가 발달할 대로 발달한 그녀는 눕히기만 하면 알아달라 보챘다. 아기침대에 우아하게 눕히는 장면은 TV 속에 나오는 한 장면일 뿐이었다.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는데 뭘 더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몰라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말 못 하는 아이를 내동댕이 쳤다. 소파에 거의 던지다시피 아이를 냅다 던져버렸다. 아이에게는 참는 게 힘들었다. 꽥 소리치지만 않았지 온몸과 온 마음을 다해 화를 표현했다.


어제와 같은 상황인 것 같지만 오늘은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새롭게 방법들을 시도해 보지만 먹히지 않는다. 울음의 톤과 빠르기와 길이가 신경을 거슬린다. 나의 모든 힘과 에너지를 다 쏟고 있는데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하나 더, 하나 더를 끊임없이 외친다.


뉴스에서 아이와 같이 뛰어내리는 엄마 얘기가 들린다. 본인 혼자 뛰어내리지 왜 같이 뛰어내리냐고, 아이가 무슨 죄냐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그 엄마가 이해가 간다.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가 힘들다.




엄마의 언어는 단순해진다. 특히 집에서 아이만 돌보고 있다 보면 아이와의 단순한 말만 되풀이한다. 지속적으로 다정다감한 목소리 톤으로 아이를 케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상황을 가정해 두고 서로의 역할을 대신 연기하는 것 또한 힘이 든다. 안 그래도 부족한 표현 능력은 바닥을 친다.


아이와 주고받는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얘기다운 얘기를 할 상대는 없었다. 얘기를 할 상대를 찾아본다든지 모임을 만들어본다는 적극성은 내게 없었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내 언어의 한계가 곧 내 세계의 한계"라고 말했다. 내 언어는 이제 막 단어 몇 개 아는 아이와 같았고 내 세계는 딱 그만큼이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이름표를 도저히 붙이지 못했다.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은 무엇인지, 무슨 느낌인지, 왜 이러는지, 그냥 화가 나서 뒷목이 뻐근하고 머리가 지끈거린다. 여러 가지 감정이 왜 자꾸만 왔다 가는지 몰랐다.


화를 내면 안 된다는 건 알았기에 화를 내지 않으려고 마음을 꾹꾹 눌렀다. 마음을 갉아먹고 갉아먹어서 더 이상 먹을 게 없었다. 화를 내지 않는다는 주변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 또한 불편했다.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어서야 '아홉 살 감정사전'이란 책을 알게 되었다. 마음을 표현하는 말 80개를 사전처럼 가나다순으로 담아낸 책으로, 어린이들이 일상에서 자주 겪는 상황을 보여 주면서 그 상황에 맞는 감정 표현을 소개한다.


감정에 대한 단어들은 알지만 정확하게 이 감정이 무엇인지 구별하고 구분할 줄 알았다면 적절하게 감정을 표현할 줄 알았을 것이다. 자기 마음을 담담히 표현할 줄 아는 것,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이름을 붙여보는 것이 꼭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란 걸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내가 느끼는 게 무슨 감정인지 이름조차 붙이지 않으니까 원인을 찾을 수가 없다. 원인을 모르니까 해결책은 당연히 실패로 돌아갔다. 단어를 살펴보고 어떤 감정인지만 정의 내려도 속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꼈다.




화를 내지 않는 것에만 집중했다. 문장 그대로 믿으니까 나쁜 엄마가 아닌가 스스로 계속 자책하며 후회했다. 엄마도 사람이다.


혹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면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도움을 청하길,

약한 모습을 좀 보여줘도 괜찮다고 나에게 얘기해 주길,

힘들 때라도 나를 먼저 챙기길,

격하게 나를 돌보길,

잘 먹고 잘 자길,

눈앞의 것을 해치우는데만 집중하지 말고 무슨 감정인지 천천히 들여다 보길,

나의 마음도 인정해 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