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결혼한 지 1년이 될 즈음 어려움 없이 임신을 했다. 엄마가 되는 것은 그냥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고민 없이 아이를 가졌다. 당시 회사에서는 책을 구매할 수 있도록 자기계발비가 책정되어 있었기에,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고 육아서적을 한꺼번에 많이 구매했다.
그중 법륜 스님의 '엄마 수업'이란 책이 있었다. '엄마'라는 역할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기에, 나만의 관점이 없는 상태에서 이 책의 내용을 그냥 100% 흡수하려고 했다. 책에서는 이런 문장들이 있었다.
- 자아가 형성되는 중요한 시점이라 적어도 세 살 때까지는 엄마가 아이를 키워야 한다.
- 이 시기에 엄마가 아이에게 얼마나 헌신적인 사랑을 쏟았느냐에 따라 아이의 인생이 결정된다.
- 아이를 정말 사랑하면 세 살 때까지는 방도 없이 텐트를 치고 살아도 엄마가 애들을 키워야 한다.
- 애들한테는 엄마가 필요하지 직장에 열심히 다니는 돈 버는 사람이 필요한 건 아니다.
의사 선생님이 쓴 다른 책에서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세 돌 되기 전에 자기조절력을 제대로 키우지 못한 아이는 이후로도 감정표현과 행동에 계속 문제가 있게 된다. 즉 이 시기의 양육자와 양육 태도가 아이의 일생을 좌우하게 된다."
생각 없이 덜컥 임신한 나에게는 그 책임감의 무게가 버거웠다. 엄마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아이의 인생이 결정된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였다. 직장을 그만둔다는 생각은 못 했다. 경력단절 여성으로 다른 직장에 새롭게 도전할 용기도, 자신감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아이를 돌보기 위해 일을 쉰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었다. 3년까지는 힘들더라도 내게 주어진 육아휴직 기간 1년만큼은 내가 옆에서 잘 붙어있겠다 다짐했다.
아이가 나왔지만 내가 읽었던 수많은 책들 속의 아이는 아니었다. 전적으로 믿고 기다려주기만 하면 된다고 배웠다. 멀리서 지켜봐 주면 된다고 배웠다. 책에서 배운 것과 달리, 아이는 시도 때도 없이 무언가를 요구했다. 그 모든 요구에 즉각 반응하는 것이 엄마가 아이를 향한 사랑과 정성을 쏟는 거라고 책에서 배웠다. 먹이고, 재우고, 기저귀 갈아주고, 씻겨주고, 안아주고, 업어주고, 놀아주고. 24시간 밀착 케어에 돌입했다.
아이 아빠는 집에서 2시간 거리의 현장으로 파견을 나가 있었다. 빠르게 집에 도착하면 8시 30분이지만, 저녁 회식 또는 야근 일정 때문에 빨리 집에 오지 못했다. 아이의 목욕은 보통 아빠들이랑 같이 하던데, 난 꿈조차 꿀 수 없었다. 자꾸 늦어지니까 내 안에 짜증과 화만 났다. '우리는 주말부부다. 나는 평일에 혼자서 아이를 돌보는 독박육아 중이다.' 그렇게 세뇌하는 게 내 마음의 안정에 도움이 됐다.
아이의 요구는 끊임없이 들어주었지만, 엄마인 나의 요구는 얘기하는 것조차 사치였다. 엄마가 잠을 자는 것은 아이를 돌보기 위해 에너지를 비축하는 시간이고, 엄마가 밥을 먹는 건 모유를 수유하기 위해 영양분을 공급하는 것일 뿐이었다.
첫째 아이 18개월에 둘째가 태어나면서 첫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길 것인지 말 것인지의 문제를 결정해야 했다. 무엇보다도 '생후 3년'이 마음에 걸렸다.
엄마가 꼭 필요한 3년이라는데 어린이집에 보내도 되는 걸까? 세 돌까지의 양육자와 양육태도가 일생을 좌우한다는데 혹시 아이에게 악영향을 주면 어쩌지? 예민한 아이인데 과연 적응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어린이집에 사건 사고가 많은데 아이가 짧은 문장이라도 구사할 수 있을 때 보내야 하나? 둘째가 태어나는 바람에 휴직을 연장하게 됐는데 굳이 보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적어도 세 살 때까지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모성 신화에 갇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올바른 결정이었는지는 8년이 지난 지금도 모르겠다. 그저 자꾸만 생겨나는 '엄마는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중심을 잡지 못하는 초보 엄마를 심하게 흔들고 무겁게 짓눌렀다.
세월이 지나고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3년간 특히 아이와의 애착형성에 신경 쓰라는 것이지 24시간 '내'가 없는 삶을 살라는 것이 아님을.
아이를 돌보지만 나를 먼저 돌봐야 한다는 사실을.
책의 정보를 보니 2013년 7월 초판 64쇄였다. 10년이 지난 2023년 현재도 개정증보판으로 판매되고 있다. 나처럼 글자 그대로 해석한 엄마들이 분명 많을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엄마들이 이 문구를 보고 죄책감을 키워오고 있었을까?